호르스트 텔칙(Teltschik·74) 전(前) 독일 총리 외교·안보보좌관은 "베를린 장벽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경제 발전과 안정·통합을 막는 장애물이었다"며 "이 장벽이 무너진 후 진정한 유럽의 발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텔칙 전 보좌관은 지난 2월 26일 독일 뮌헨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서 "서독이 유럽 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통일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콜 총리의 외교·안보보좌관을 지냈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미국과 구(舊)소련, 영국, 프랑스 등과 동·서독 통일에 대한 외교 협상을 벌였다. '동서 화합의 데탕트 시대를 연 미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있었다면 독일 통일을 이룬 콜 총리에게는 텔칙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있다.

호르스트 텔칙 전 독일 총리 외교·안보보좌관이 지난 2월 26일 독일 뮌헨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통일 전 서독의 외교력은 어땠나.

"막강한 경제력만큼 외교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유사시 우리를 방어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만 했고, 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서 대립과 냉전 체제는 서독이 통일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논리로 작용하기도 했다. 당시 콜 총리는 해외 정상들과 만날 때마다 독일 통일과 유럽의 통합과 번영은 함께 이뤄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통일 위해 어떤 외교 노력을 했나.

"당시 콜 총리는 (서방뿐 아니라)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과도 유대를 강화했다. 동독 주민의 대량 이탈 사태 원인이 됐던 헝가리의 국경 개방은 이런 노력의 결과다. 콜 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서독 중심의 통일을 반대했던) 구소련 인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통일 후 뭐가 변했나.

"콜 총리는 통일 후 첫 의회 연설에서 '이제 통일 독일은 국제 관계에서 전보다 훨씬 많은 의무를 갖게 됐다'고 했다. 이는 독일 외교가 (서방 일변도에서) 동쪽으로 함께 뻗어나가게 됐다는 걸 의미했다. 통일 독일은 동독을 계승해 동유럽에서도 강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독일 통일이 유럽에 끼친 영향은.

"우선 동·서독 분단 때 상존했던 '세계 3차대전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졌다. 유럽 전체의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현재처럼 수십년간 평화로운 시기가 없었다. 유럽 통합의 의미도 바뀌었다. 1980년대 유럽 통합은 서유럽의 통합을 의미했지만, 통독(統獨) 이후 동유럽과 북유럽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독일 통일이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EU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2년 11월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하기 위해 전용기를 탄 헬무트 콜(오른쪽) 당시 총리와 호르스트 텔칙 외교·안보보좌관이 나란히 앉아 있다.

―주변국들이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인내가 필요했다. 통일 전에 동독은 물론 주변 당사국들이 통일에 대해 입장을 수시로 바꾸고 예상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우리 입장을 강요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해 나가야 주변국을 설득할 수 있다."

―한국은 통일을 위해 어떤 외교를 해야 하나.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이 이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내가 독일 정부에 있을 때 미국과 소련을 두 마리 커다란 코끼리에 비유하곤 했다. 두 마리 코끼리가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다투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서유럽의 통합과 번영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중국과 충분히 대화하고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호르스트 텔칙(74)은 1977~1982년 독일연방의회 기민당-기사당연합 사무총장을 지냈고, 1982~1990년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 독일 통일을 위해선 동·서독 합의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전승국(戰勝國)인 미국·구소련·영국·프랑스 등 4개국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텔칙은 '2+4 회담'을 통해 이 나라들을 설득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독일 내 지한파(知韓派) 중 한 명으로 서강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를 받았고 한독미디어대학원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