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통일 과업을 달성한 독일은 부러움의 대상이며 우리 대한민국이 가야 할 목표"라며 "우리에게 맞는 대안을 모색하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착실히 준비해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독일이 그랬듯이 우리의 통일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통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하나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통독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을 둘러봤다. 예정보다 7분 늦게 브란덴부르크 서쪽 광장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안내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과거 서베를린에 속했던 서편 광장을 출발, 브란덴부르크문 아래를 통과해 동베를린 지역이었던 동편 광장까지 150m를 걸었다.

朴대통령, 전쟁 희생자 추모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희생자를 추모하는‘노이에 바헤(Neue wache)’기념관을 방문해 추모비에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기념관 방문은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일본 정부 움직임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해석됐다.

이어 인근 베를린 시청을 찾은 박 대통령의 관심사는 1990년 통독 이후 독일이 성취한 번영이었다. 박 대통령은 보베라이트 시장에게 "통일 후 베를린은 유럽의 중심으로 성장했다"며 "한국의 평화통일 노력에 지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안내했던 서베를린 시장은 나중에 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방독 5일째인 1964년 12월 10일 팬아메리카 전세기를 타고 서베를린에 도착했다. 도착 연설에서 그는 "나는 조금 전에 동독 상공을 지나면서 바다와 같이 캄캄한 동독을 내려다보고 북한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처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그는 브란덴부르크문과 베를린 장벽을 시찰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포츠담광장의 목제(木製) 전망대에 올라 소련이 점령한 동베를린 지역을 한동안 바라봤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작한 철의 장막은 동유럽과 소비에트의 광대한 영역을 거쳐 만주로 뻗어 내려가 우리나라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것(통일)은 결코 꿈이 아니고 실현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두드리면 문은 열릴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염원'은 그 딸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와 '통일'을 우리 사회의 중심 어젠다로 끌어올렸다. 50년 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80달러였고, 2013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2만6205달러로 327배 늘어났다. 아버지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한국의 국력을 배경으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4강(强)에 적극적으로 통일을 얘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 시청을 방문한 뒤 전쟁 희생자 추모기념관에 헌화했다. 이 기념관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희생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일본 정부의 우경화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비쳤다.

이번에 박 대통령은 독일에서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25일 밤 베를린 테겔공항에 도착한 박 대통령을 위해 야간임에도 예포 21발을 쐈다. 독일 정부는 당초 박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자국 영공에 진입하면 전투기를 출격시켜 엄호 비행토록 할 계획이었으나 야간이라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 프로이센 제국이 군사력을 자랑하기 위해 1791년 베를린 중심가인 파리저 광장에 세운 개선문이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이 문을 통해서만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었다. 1989년 11월 10만여 명의 인파가 이 문 앞에 모인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다. 이후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