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로 데뷔한지 17년째, 그녀는 오늘도 오후 두 시면 라디오 마이크 앞에 앉는다. (이하 )의 진행자, 중독성 있는 허스키보이스의 주인공이다.

요즘 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는데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녹음하나요? 평일은 다 생방해요. 생방을 하면 (청취자들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생방을 좀 고집하는 편이에요.

스케줄은 그 위주로 짜여져 있겠네요? 네. 그래서 매니저와도 얘기하는 게, 아무리 큰돈 버는 행사가 들어와도 라디오 진행하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해요. 그래서 (행사를) 포기하고 생방을 하는 경우가 많죠.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죠? 보통 아침 7~8시쯤 일어나서 9시 반까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요. 유치원이 10시까지긴 한데 좀 더 일찍 가야 아이도 애들이랑 놀고 하니까 30분 일찍 보내요. 유치원 보내고 나면 제 운동을 해요. 요가나 PT를 하고 점심 먹은 후에는 한 시간 일찍 스튜디오에 가요. 라디오 생방이 4시에 끝나는데 녹화나 행사가 없는 날은 집으로 와요. 아이도 종일반이라 오후 5~6시쯤 오거든요. 제 생각에 저희 애가 저 닮아서 공부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애랑 계속 놀아요.(웃음) 집 근처 공원에 가서 놀든지 집에서 도둑잡기 같은 놀이를 하든지요. 밤 9~10시 사이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저는 모니터를 해야 되니까 드라마를 보든지 책을 봐요. 대체적으로 그런 일상이에요.

보통 12시 전에는 잠을 자나요? 전에 라디오(, 이하 )를 새벽에 진행하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새벽 한두 시 전에는 잠이 잘 안 와요. 남편은 아침에 회사 가야 하니까 일찍 자고요. 남편이 퇴근하면 그때 얘기를 나누거나 하는 패턴이죠.

때와 지금 하는 는 시간대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여러 모로 차이가 있겠죠? 완전 달라요. 청취자들은 70~80%가 중고등학생이었다면 지금은 직장인, 주부들이 많다고 보면 돼요. 좋은 건, 때 중고등학생이었던 청취자들이 지금 를 듣는 직장인, 주부가 됐어요.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니까요.

타깃층이 다르니까 진행하는 방식이나 내용에도 차이가 있겠네요. , 때는 대체적으로 이성 친구나 학업 성적에 관한 사연이 왔다면, 지금은 물가나 자식 얘기, 남편 얘기, 아내 얘기 같은 게 주로 와요. 아무래도 지금은 공감의 폭이 더 커졌죠.

워낙 두 시 라디오가 청취자도 많고 경쟁률도 심할 텐데요. 전쟁터예요.(웃음) 근데 라디오는 청취율 조사를 2개월에 한 번씩 하거든요. 매주 시청률이 나오고 쫓기는 TV보다 훨씬 오래 기다려주는 템포라서 편해요. 또 라디오는 확실히 반응이 천천히 와요.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마니아가 되고 가족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다 보니까 청취율에 대한 부담이 없어요. 동시대에 컬투가 하는 '넘사벽' 프로 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더 좋은 것 같아요. 비슷비슷하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아예 '넘사벽'이니까요. 위를 보고 천천히 가겠다는 장기 목표를 가지고 가려고 해요.

저도 차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많이 듣는 편인데, 음악 위주로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가 낫죠. 그래서 저희가 음악을 굉장히 많이 틀어요. (좌중 웃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으면 가 훨씬 낫겠죠. 워낙 두 분(컬투)은 대한민국 국민이 인정하는 개그 듀오잖아요. 그렇다면 저희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러니까 (와는) 아예 색깔이 달라요. 동시간대에 색깔이 다른 프로가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선물도 많이 주더라고요. 여성지 못지않게. 난리예요, 난리. 모든 선물을 잘 모아놨다가 청취율 조사 때 딱 드리죠.(웃음) 그게 또 제작진들의 노하우기도 하고요. 그리고 평소에도 저희 프로가 선물을 많이 주는 프로로 유명해요.(웃음)

앞으로도 라디오를 계속할 건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를 들으면서 꿈을 키웠어요. 어떻게 보면 (라디오가) 제 유년기의 가장 큰 친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감성이 아직 남아 있어요. 라디오로 데뷔를 하기도 했고요. 제가 늘 꿈꾸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지금 하고 있는 셈이죠. 제가 언제까지 라디오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이문세, 박수홍 씨 같은 분들과 만담 프로를 해보고 싶어요. 처럼 20~30년 할 수 있는 그런 프로를 하고 싶죠.

TV와는 다른 라디오만의 매력이 있겠죠? 아무래도 더 편하죠. 옷차림에서 편한 것도 있고요.(웃음) 음성을 통해서만 만나기 때문에 (청취자들이)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점, 또 음악을 많이 전해드리니까 심신이 치료되고 힐링이 돼요. 청취자들도 그렇겠지만 저 역시 힐링받고 있거든요. 그런 점들이 좋아요.

마당발 그녀가
사람을 사귀는 법

연예계 선후배, 심지어 기자들 사이에서도 사람 좋기로 소문난 박경림. 그 이유를 간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간의 관심, 조금의 호의만 보태면 그녀처럼 될 수 있다. 다만 그 약간의 관심과 호의가 맘처럼 쉽지 않을 뿐이다.

어릴 때 꿈이 뭐였나요? MC, DJ가 꿈이었어요. 말하는 직업이요.

스스로 생각하는 현재 본인의 직업이 뭐라고 할 수있을까요. 개그우먼? 방송인? 제가 공채 출신이 아니라서 부레옥잠 같은 면이 있어요. 늘 떠 있죠.(웃음) 주로 엔터테이너, 방송인으로 불려왔어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는데, 요즘은 활동 영역이 넓어지다 보니까 저 같은 방송인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되게 기분 좋더라고요. 방송인도 정말 좋고요.
어릴 때의 꿈을 지금 이룬 거네요.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 가서 처음 MC를 봤어요. 그때부터 '진행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죠. 어릴 때 부유하게 살았던 게 아니라 (직업이) 안정적이어야 된다는 생각에 선생님도 꿈꿨고요.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 보면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거나 나쁘잖아요. 나는 칭찬 많이 하는 선생님이 돼서 학생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도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있네요. 그런 취지에서 진행자가 되고 싶었어요. 전교생 앞에서 진행을 여러 번 했는 데, 학생들이 제가 재밌는 얘기를 하면 막 웃고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 반응이 그저 그런 거예요. 그게 참 매력적이었죠. 용기도 생기구요.

학교 다닐 때도 유명했습니까? 나름 (서울) 은평구에서는요. (좌중 웃음) 은평구에서 축제란 축제는 거의 다 사회를 봤어요. 중학생 때부터요. 고등학생 때는 옆 학교 사회까지 봤어요. 그때 받은 돈으로 친구들과 떡볶이 사 먹고 그랬죠. 나중에 방송에 데뷔를 했는데 모 연예인이 그러더라고요. '누나, 저 그때 그 학교 학생이었는데 누나가 진행하는 거 봤어요.'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대중 앞에 활발하게 나서는 성격이었나요? 네. 저희 아버지가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세요. 어디 가면 회장 하고 그러시거든요.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반에서 오락반장 같은 거 하면서 세 명 모이면 세 명 즐겁게 해주고, 열 명 모이면 열 명 즐겁게 해주면서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연예계 마당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렇습니까? 제가 한 16년 동안 TV, 라디오를 계속했어요. 친한 사람이 없으면 말이 안 되죠. 특히 라디오는 노래 나갈 때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없으니까 게스트와 얘기를 나누게 되고요. 제 신조가 '이 사람을 언제 또 볼지 모르니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하자'거든요. 특히 신인들을 많이 챙겨주려고 해요. 저도 경험해봐서 알지만 신인들에게는 누가 말을 잘 안 걸어줘요.(웃음) 그래서 저는 항상 다른 분들보다 신인들한테 말을 더 많이 걸어요. 연습은 얼마나 오래 했어요? 어디 살아요? 어디서 태어났고요? 부모님이 오늘 방송 나온다니까 뭐라고 하세요? 등등요. 그럼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분위기는 이미 '절친'이에요. 그 친구들하고는 정말 격의 없이 친해져요. 인피니트라든지 엠블랙, 빅뱅도 데뷔 때 그 당시 제가 진행한 로 처음 라디오에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잘돼서) 다시 만나면 우리 애들 같은 거예요. '아이고, 잘 돼서 너무 좋다' 하면 '언니', '누나' 하고 좋아하고요. 그런 걸 보면 '처음'이라는 의미가 되게 큰 것 같아요.

인맥 관리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게 있나요? 저는 참 감사한 게, 사람에 대한 기억력이 되게 좋은 편이에요. 그 사람이 했던 얘기, 그때 입었던 옷 같은 걸 잘 기억해요. 그래서 몇 달 후에 만나도 '너 그때 이런 일 있었다더니, 잘 해결됐니?' 하고 물어보니까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팁이나 키포인트는 뭐가 있을까요? 그 사람의 눈빛을 기억해요. 그날 그 사람의 눈빛이 힘든 눈빛이었는지 기쁜 눈빛이었는지요. 그럼 그다음에 만났을 때 상대가 전에 어땠는지가 기억이 나요. 저는 상대가 월드 스타가 되고 하면 오히려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바쁠 테니까. 근데 상대가 힘든 일을 겪고 있으면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에요. 얘기를 들어주죠. 사실, 힘들 때 '힘드니?' 하면 더 힘들고. 그냥 아무 얘기나 하게끔 해서 들어주는 게 도움이 돼요. 그리고 또 하나, 상대방에게 절대 기대를 안 해야 돼요. 기대를 하는 순간 1%라도 실망이 없을 수가 없어요. 내가 계속 밥 샀는데 저 사람이 한 번도 안 사면 인간적으로 실망을 안 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은 어떨까'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이요. 누구 자식이 좋은 학교에 합격을 했다고 하면 '축하해, 한턱 쏴'가 아니라 '그렇게 하기까지 참 고생했겠다. 내가 밥 한번 살게'라고 하는 거죠.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다가가는 것이 관계를 맺는 데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방송 활동 하면서 멘토나 롤 모델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요? 방송인으로서 자기 관리를 잘하고 롱런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이)문세 오빠를 닮고 싶어요. 자기 관리를 굉장히 철저히 해요.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 관리를 철저히 해야 된다'며 운동을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아요. 공연도 절대 게을리 하지 않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 '문세 오빠가 정말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내 분야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정말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또 다른 면에서 저의 멘토는 김국진 씨예요. 국진 아저씨는 말수가 원체 적어요. 인터뷰 하면 아마 지면이 많이 줄 거예요.(웃음) 단어 하나에 정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분이세요. 제가 정말 힘들면 찾아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놔요. 그럼 아저씨는 '허허. 별일도 다 있네' 하고 끝이에요. 제가 힘들어하면 '경림아, 너도 해보렴. 별일도 다 있네'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따라 하면 '그래, 그거 별일이야. 네가 별일을 가지고 맘 상해한 거야'라고 하죠. 가만 생각해보면 정답인 거예요. 저에게 '큰일은 별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큰일은 많이 온다'는 걸 많이 깨닫게 해주신 분이에요. 국진 아저씨는 혼자 해결하게 하지, 절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내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저씨 만나서 한 두 시간 얘기하고 집에 들어가면 디톡스 된 느낌이에요.

근데 왜 이문세 씨는 오빠라 하면서 김국진 씨에게는 아저씨라고 하나요? 왜 그러냐면 나이와 상관없이 제가 만난 연도에 기준한 거예요.(웃음) 제가 중학교 때 만난 사람은 그 당시 저한테 아저씨였거든요. (박)수홍 아저씨나 국진 아저씨가 그래요. 문세 오빠는 고등학교 때 만나서 그때는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때라, 그래서 오빠가 됐죠.

친한 후배는 누가 있나요? 최근에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열심히 사는 박슬기라든지 의 하지영 양, 제가 좋아하는 양세형 군, 그리고 작년에 라디오 시작한 (박)은지가 있죠.

자주 만납니까? 동생들은 꾸준히 자주 보고요. 그리고 제 영원한 친구들이 있잖아요. (이)수영이나 (장)나라, (이)기찬이라든지요. 날짜를 정해서 보는 게 아니라 생각날 때 봐요. 뭐 하냐, 애는 별 탈 없고? 하면서요. 수영이랑 제가 애 얘기를 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수영이 애는 4살이고 제 애는 6살이거든요. 둘 다 아들이고요. 남편도 둘 다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할 수 있는 얘기가 비슷해요. 10년 전에는 통화하면 '오늘은 스케줄 몇 개 뛰었어?', '이번에 가수왕 됐던데 축하한다' 이런 말 했는데 지금은 '그래서 예방접종은 맞췄어?', '이번 감기는 독하니까 무조건 마스크 씌워라' 같은 말 하니까 우리끼리도 통화하면서 가끔 웃죠. 장나라 씨는 아직 솔로잖아요. 나라에게는 '남자는 말이야. 이런 남자를 만나야 돼' 같은 얘기를 많이 해요.(웃음)

장나라 씨가 한참 어리지 않나요? 3살 차이 나요.

3살밖에 차이 안 나요? 3살'밖에'라니요. 아니, 말씀이 너무 심하시잖아요. 지금까지 되게 좋았는데. (좌중 폭소) 10년 뒤에 만나면 이 말만 기억나겠네.(웃음)

장나라 씨는 시집갈 계획이 없대요? 저희는 계획에 없었던 적이 없어요. 늘 계획은 있죠. 나라도 '언니들 볼 때마다 내가 빨리 결혼을 해야 되는데' 이런 말 많이 하죠. 근데 제가 그랬어요. 결혼은 빨리 하고 늦게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많이 만나보라고해요. 그리고 정말 네 짝이라고 생각했을 때 결혼을 하라고요. 결혼을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말해줘요.

감사하는 마음,
경청하는 여유

정점의 자리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소신을 택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2002년 돌연 뉴욕으로 떠난 그녀는 그 용기 덕분에 초심을 유지했다. 그게 바로 박경림이 롱런하는 비결이다.

한창 활동하다가 뉴욕으로 유학을 갔어요. 단순히 공부 욕심 때문이었나요?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저는 학문적인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근데 죽기 전까지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사람 공부든 어떤 공부든지요. 그래서 (외국에 나가서) 많이 보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 너무나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방송인만 꿈꾸고 달려와서, 어떻게 보면 누구보다 빨리 꿈을 이룬 케이스예요. 근데 그것만 보고 왔기 때문에 그것만 알지 다양한 걸 보고 경험한 적이 없어요. 대학생 때도 (연예계) 활동이 너무 많아서 캠퍼스의 낭만이나 즐거움을 다른 친구들처럼 경험하지 못했고요. 에너지도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어요. 하루에 7~8개씩 스케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떠나자, 마음먹었어요. 결정에는 경우의 수가 있잖아요. 최상과 최악을 다 고려해봤는데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요. '안 하면 평생 후회하겠다.' 근데 평생 후회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 끊고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땠나요? 딱 2년 있었거든요. 정말 좋았어요. 갔다 오니까 예전 같지 않다, 내리막길이다, 이렇게 평가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적어도 제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니까 나름 기고만장해져서 제가 되게 큰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미국에서 누가 절 알아요. 아무도 모르죠. 이 정도밖에 안 됐던 내가 정말 기고만장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죠.
 
가장 잘나갈 때 떠났으니까요. 연예계에서 제가 그 당시 굉장히 많은 일을 했었기 때문에 '내가 빠지면 좀 삐걱대고 혼란이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 기대감은 한 1주일 만에 사그라지더라고요.(웃음) 삐그덕은커녕 더 잘 돌아간다는 걸 몸소 체험했죠. 그 후로는 기회가 올 때 항상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해요.

유학 다녀와서 가장 달라진 점은 뭔가요? 솔직히 그전에는 방송을 5~6개씩 해도 감사함을 잘 몰랐어요. 지금은 하나를 해도 정말 감사해요. 기회가 왔을 때 감사할 줄 알고 최선을 다해야지, 이거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교만인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떼 토크'를 보면, 그 안에서 한마디 하려고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지잖아요. 내가 여기서 어떻게든 튀어보겠다며 한마디 더 하려고 하면 신경전이 돼요. 근데 시청자도, 제작진 입장에서도 거기 나온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다양한 얘기를 해주길 원하거든요. 누구 한 명 기죽지 않고 각자의 재량을 펼치길 원한다는 거죠. 옛날에 저는 저만 돋보여야 됐어요. 남이 웃기면 불안했어요. '내가 더 웃겨야 되는데' 하면서 동공이 불안해졌죠.(웃음) 그러다 보니 남의 말에 리액션도 별로 없었고요. 지금은 남들 얘기를 잘 들어줘요. '저 사람은 저걸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까'가 보이더라고요. 국진 아저씨가 어느 날 그래요. '가만히 듣다 보면 내가 말할 기회가 온다.' 그 말이 진짜 맞아요.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다 보면 저도 할 말이 많아져요.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얻나요? 평소 책을 자주 읽는다든지요. 소설은 사실 시간이 없어서 잘 못 읽고요. 언제든 끊어 읽을 수 있는 수필이나 자기계발서를 좋아해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제 또래도 많이 보지만 어린 친구들, 대학생들이나 방송하는 동생들을 자주 봐요. 만나면 요즘 얘기도 많이 듣고요. 아니면 저보다 선배님들 만나서 어른들 얘기도 듣고요. 그러다 보면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과정에서 제 생각이 생기고요.

특별히 하는 관리는 있습니까? 관리 엄청 해요.(웃음) 일주일에 한 번 피부 관리 받는 얼굴이에요. 근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제가 워낙 비밀리에 피부 마사지를 받아서인지.(웃음) 살은 이번에 느꼈지만 맘고생 다이어트가 최고예요.(웃음) 세 달 동안 마음먹고 운동해서 3㎏을 뺐는데, 이번에 사흘 동안 2.5㎏이 빠졌어요. 운동은 요가랑 헬스 해요. 운동 나름 되게 열심히 해요. 반신욕도 좋아하고요.

이 세상 모든 엄마를
응원합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우리와 뭐 그리 다르겠는가. 그들도 때로는 산후 우울증을 겪고, 일을 고민하며, 감정의 기복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이다. 박경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그녀가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고픈 이유다. 힘들었던 과거의 자신을 알기에 보다 힘껏 다독여주고 싶다.

지금 아이가 6살 됐죠. 어때요? 애가 항상 가족들을 모이게 해요. '자, 다 거실로 나오세요. 지금부터 제가 마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렇게요. 왜, 태교가 중요하다잖아요. 제가 임신했을 때 방송을 되게 많이 했어요. TV도 서너 개 하고  라디오 도 하고 있었고요. 아기 낳기 이틀 전까지 진행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애가 진행을 해요.(웃음) 태교가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죠. 그래서 저희 남편이 둘째 가지면 뜨개질이나 클래식 같은 걸 많이 들으래요.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웃음) 애가 눈 뜨면서부터 자기 전 눈 감을 때까지 말을 해요.

그럼 엄마, 아빠가 힘들 텐데요. 계속 대꾸를 해줘야 되니까, 솔직히 말하면 피곤한 날은 좀 지쳐요. 근데 '그래, 내 자식 대꾸를 나 아니면 누가 해줄까' 싶어서 저는 끊임없이 대꾸를 해줘요. 나한테 이러는 건 괜찮은데 유치원 가서 선생님한테도 그러면 (선생님이) 피곤하실 텐데 싶죠.(웃음)

아이가 나중에 방송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줄 건가요? 적극적으로 돕겠다, 이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하라고 할 것 같아요. 체력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쪽 일은 정신적인 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이 일이 하고 싶고, 정신적인 것들을 이겨낼 수 있으면 그 어떤 직업보다 감사하고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적인 게 중요하다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네요. 다양한 의미가 있죠. 왜냐면 가끔은 내 맘 같지 않게 오해도 살 수 있고, 누군가의 이야깃거리로 화제에 오를 수도 있고요. 근데 그걸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면서 해명할 순 없잖아요. 때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감사하게 생각도 해야 되고, 때로는 억울하지만 말 못할 때도 있고.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면 찬성해요.

감당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연예인들이 많죠. 많죠.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일이 크게 번지는 건 쉬운 반면, 그에 대한 해명이나 무죄판결에 대해서는 (기사가) 작게 나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기사를 보면) 그 일을 겪는 사람은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 많이 하죠.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오해를 많이 산, 정신적으로 강인해져야겠다고 깨달은 사건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다 아시겠지만, 결혼하고 애기 낳은 다음 에 나간 적이 있어요. 아이랑 떨어지는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복받쳐서 울었어요. 같이 출연한 모 연예인이 '왜 울어요. 집안에 우환이 있어요?' 했던 게 기사 타이틀로 보도가 되면서 집안에 우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웃기고 다 지나가리라 하고 말았는데 많이 힘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산후 우울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그게 울 일도 아니었는데 왜 울었지?라고 생각될 정도의 일들이 그때는 그렇게 슬펐고요. 그때 제 감정이 그랬어요.

그 일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군요. 제가 말실수를 해서 비난받는 건 당연히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어요. 근데 집안에 우환이 있냐는 얘기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라 제 마음이 훨씬 아팠던 것 같아요.

남편과는 어떤가요? 남편은 늘 결혼사진을 보며 '사진 속 저 아이는 어디 갔냐'고 그래요.(웃음) 너무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고 농담을 하죠. 저희 남편은 그냥 회사 잘 다니고 평범하게 살아요. 결혼하고 1년 정도는 정말 많이 싸웠어요. 근데 주위에 물어보니까 다 그렇대요. 내 맘 같지 않으니까 되게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서로를 너무 잘 아니까요. 둘 다 같은 AB형인데도 되게 달라요. 예를 들어 여행을 가면 남편은 그곳을 다 둘러봐야 돼요. 계획도 정말 촘촘히 잘 짜요. 근데 저는 여행은 쉬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개념 자체가 다르죠. 여행 가면 쉬어야 되는데 저희 남편은 쉬려면 집에서 쉬지 왜 제주도 와서, 외국 와서 쉬냐고 해요. 처음엔 그것 때문에 정말 많이 싸웠는데 그렇게 1년 정도 싸우고 나니까 합의점이 생겼어요. 저는 아침에 실컷 쉬고 남편은 그 시간에 본인이 보고 싶은 걸 보고 와요. 그리고 오후에 저랑 돌아보는 거죠. 그렇게 하니까 정말 좋아요. 이렇게 배워가는 것 같아요.

남편은 아직 삼성에 있나요? 네. 잘 있어요. 이번에 과장 승진 했습니다.(웃음)

일반인 남편이다 보니 방송 활동에 대해 이해 못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저희 남편이 이쪽에 관심 많은 사람이었으면 어쩌면 힘들었을 수도 있는데, 진짜 제가 너무 서운할 만큼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일단 TV를 안 봐요. 못 보는 게 아니라 안 봐요. 그러니까 저는 조용히 혼자 보죠. 가끔은 남편 자야 되니까 방해 안 되게 모바일로 봐요. 남편 퇴근이 늦어지면 드라마 등을 몰아서 다 보죠.

주부들의 관심사는 늘 육아잖아요.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싶으세요? 저는 솔직히 막 쫓아다니면서 챙겨주는 엄마는 아닌 것 같아요. 때가 되면 꿈은 스스로 찾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어요. 어떤 엄마들은 TV가 안 좋다며 아이에게 안 보여준다고 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 보진 않아요. 시간만 정해놓고 본다면 만화도 보여주고요. 혹시 알아요? 얘가 진짜 마블사(미국 만화책 출판사인 마블 코믹스를 비롯한 대형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 같은 데도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무얼 꿈꿀지 모르기 때문에 그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주말에도 스케줄이 있나요? 주말엔 (일을) 안 해요. 아이랑 놀아주려고요. 영화관도 많이 가요. 아이가 영화 보는 걸 워낙 좋아해서 3D, 4D 불문하고 다양하게 봐요. 아니면 공원에 가서 하루 종일 놀기도 하고요. 또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제가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잖아요. 틈나면 그림 같이 그려주고 그 정도지, 특별한 교육관을 갖고 어떻게 키우겠다 하는 건 없어요.

둘째 계획은요? 올해 둘째를 가질 계획이에요. 그럼 내년쯤 낳겠죠.

방송 활동의 장기적인 계획은 뭔가요?
계속 방송을 하고 싶다는 게 제 장기 계획이에요. 그리고 때가 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를 갖고 싶어요. 그게 공연이 될 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형식이든 간에요. 옛날에는 '어떤 프로를 하고 싶다'가 목표였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과 계속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예요. 끊임없이 열린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앞으로도 사람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다른 영역을 개척해보고픈 생각은요? 지금 이 영역을 더 파야 할 것 같아요.(웃음) 근데 저는 감사하게도 특강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어느 순간 1년에 하는 특강 횟수가 꽤 많더라고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다른 영역이죠. 특강은 제가 (청중에게) 에너지를 주기도 하겠지만, 받는 경우도 많아서 좋아요.

주로 어떤 주제로 특강을 하나요? '도전'이 제일 많고 그다음이 '꿈'에 관한 것이요. 아무래도 제 경험에 의한 것들이죠.

박경림 씨 같은 딸을 낳아서 연예인으로 성공시키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아요. 그런 주부들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저 같은 딸을 키운다면) 큰 축복이죠. (좌중 웃음) 요즘 가장 인기 많은 꿈이 연예인이라는데, 중요한 건 내 아이가 왜 그걸 하고 싶은지 정말 진지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이 기본인 것 같아요. 이게 아이의 꿈인지 부모의 꿈인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나중의 결과는 천지 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속이 곪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아까 말했듯 이 분야는 어느 분야보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 그걸 이겨낼 수 있다면 적극 응원해줄 수 있는 직업이죠.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요?  '엄마들의 꿈'이 요즘 제 관심사예요. 저도 애기 낳고 한동안 경력이 단절되어도 봤고, 자신감이 없어져도 봤고, 하루에도 몇만 가지 감정이 널뛰기도 봤어요. 그래서 깨달은 건 이거예요. 힘듦의 모양이 다를 뿐이지 다 그러고 산다는 것, 그래서 별일 아니라는 거요. 엄마들이 힘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을 키우는 것도, 정치인을 키우는 것도, 유명 스케이터를 키우는 것도 결국 엄마잖아요. 여자가 아니라 엄마라는 거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고 그렇게 자란 아이가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어요. 엄마가 행복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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