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무혈 합병된 후 인접 친러 지역까지 동요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격적인 병합 행보에 속수무책이었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뒤늦게 러시아 제재와 견제를 위해 직접 유럽 순방에 나서는 등 미·러는 냉전 시절의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결집시키는 등 압박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는 러시아 통합을 주장하는 친러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고 22일 AP가 보도했다.

이날 도네츠크에서는 친러시아계 주민 약 5000명이 레닌 광장에 모여 러시아 통합을 묻는 주민 투표 실시를 요구했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지구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러시아인이 중앙정부에 맞서 싸우고, 러시아군을 환영할 것을 촉구했다고 AP는 전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지난 주말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며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침공에 나설 경우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있는 고속도로 인근에 집결해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러시아 측은 크림반도 병합 직전 때와 마찬가지로 병력 배치의 목적이 군사 훈련에 있다고 주장한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러시아 국방부 차관은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배치하는 병력을 제한하는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다"며 "러시아 정부는 병력을 한 곳에 결집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유럽 군사안보기구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추가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필립 브리드러브 NATO 사령관은 22일 "국경에 있는 러시아군은 준비태세가 돼 있다"며 "결정만 내리면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진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서부와 국경을 맞댄 몰도바 내 미승인국가로 '제2의 크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22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자국 공군 대령을 억류하고 있다며 석방을 요구했다. AP는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주둔해온 우크라이나군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공군 대령을 억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국 BBC는 친러시아 측 자경단원들이 지난 주말 사이 크림반도 내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잇달아 장악했고, 우크라이나군은 이 과정에서 저항을 포기하고 기지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 안보정상회의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협의를 위해 직접 23일 순방길에 올랐다. 오바마는 현재 경제 협력을 위해 유럽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러시아에 공세를 취해온 미국과 수수방관해온 중국이 어떤 의견을 주고받을지 관심거리다.

중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에 개입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 15일 유엔(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된 ▲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 무효 선언 ▲크림 지위 변경 불승인 등을 골자로 한 결의안에도 기권했다.

리바오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 간 회담에서 거론될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의 대응 방향은 ‘조용함과 절제’”라고 SCMP에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혈 병합’한 러시아를 경제·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등 압박을 가하기 위해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아랍에미리트 등을 차례로 방문,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