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3시간, 변시 공부 10시간30분.'

서울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최근 졸업한 A(26)씨는 작년 마지막 학기 때 하루 3시간씩 3과목(9학점)만 들었다. 나머지 시간은 지난 1월에 치른 '변호사 시험'(변시·辯試)'에 올인했다. 오전엔 혼자 도서관에서 이론서를 정독하고, 오후엔 같은 로스쿨생들과 스터디하며 변호사시험 문제를 풀었다. 밤 10시에 귀가해 새벽 2시까지 또 시험공부. "사실 저 같은 로스쿨생이나 사시생(사법고시생)이나 다를 바가 없죠. '로시생'이라니깐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실무형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지난 2009년 봄 문을 연 전국 25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올해로 출범한 지 5년이 됐다. 3년 과정의 로스쿨에는 매년 약 2000명의 신입생이 입학했고, 지난해 첫 로스쿨 졸업생들이 배출되면서 변호사 수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의 한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찾아가고 있다. 로스쿨 출범 5년이 됐지만‘다양한 분야 전문성을 갖추고, 체계적 실무 교육을 받은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도 로스쿨 학생들은‘로스쿨 커리큘럼과 강의 내용이 과거 법학과 수업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로스쿨이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변호사 시험' 준비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학원(로스쿨)의 강의 내용이 학부(법대)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무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전문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많게는 연간 20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는 로스쿨생들의 상당수가 졸업 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들의 취업난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기존 사법 고시 체제에선 학력 제한 없이 누구나 사시(司試)에 합격하면 판사·검사·변호사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3년짜리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체제로 연차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2018년이면 사법시험은 완전히 없어진다.

정부가 사시를 대체하는 로스쿨을 도입할 당시 내세운 '목표'는 크게 세 가지. ①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 양성 ②체계적인 실무 교육으로 실무형 법조인 양성 ③사회적 손실이 큰 '사법고시 폐인(�人)' 해결이었다. 하지만 본지가 서울과 지방의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 졸업생들을 취재한 결과 현재의 로스쿨은 도입 목표 ①~③ 모두에서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다.

세 마리 토끼 다 놓치나

로스쿨 학생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것은 로스쿨(대학원)의 커리큘럼과 강의 내용이 과거 학부의 법학과 수업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수도권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로스쿨에 다니는 C(25)씨는 "이름만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바뀌었지 법학과 학부 수업이랑 내용이 똑같다"고 했다. "헌법 교수는 학부 때랑 똑같은 교재를 쓰면서 판례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이론만 읊어대죠, 형법 교수는 소수 학설인 자기 학설 위주로 가르치고 거기서 시험을 냅니다. 교수들을 믿을 수 없어 인터넷 동영상으로 신림동 강사들한테 배워요. 배우는 건 학부랑 똑같은데 등록금은 왜 서너 배 비싼지 모르겠어요." 작년 기준으로 현재 국립대 로스쿨은 연간 965만~1346만원, 사립대 로스쿨은 1545만~2084만원의 등록금(대학알리미 자료)을 받는다.

서울 지역 법대 출신으로 사법연수원에 최근 입소한 D(25)씨는 "처음 로스쿨 교재 내용을 본 후 '법대 4년 다닌 학생과 로스쿨 3년 다닌 사람이 뭐가 달라서 로스쿨 졸업생들에게만 변호사 자격증을 보장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로스쿨 수업 내용이 학부 때와 비슷한 큰 이유는 교수진이 크게 바뀌지 않은 탓이 크다. 로스쿨 설립 취지대로 '실무형 법조인'을 양성하기엔 실무형 교수진이 너무 적다는 얘기다. 가장 잘나간다는 서울대 로스쿨조차 교수 56명 중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는 20명, 실무 경험이 없는 교수가 36명이다.

"사시 낭인이 변시 낭인으로?"

정부가 로스쿨로 해결하고자 했던 '고시 낭인' 문제는 로스쿨 체제에서 '변시 낭인'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변호사 시험은 합격률이 입학 정원 대비 75%로 정해져 있고,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5회만 응시할 수 있다.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가 작년 6월 '로스쿨 5년 점검과 개선 방향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행 변호사 시험 제도에서는 해마다 전국 로스쿨 정원 2000명 중 1500명만 합격하기 때문에 누적되는 재수생까지 포함한 응시생 대상 변시 합격률이 2012년 75%에서 2013년 60%, 올해 50%, 2017년 33.6% 등으로 점점 낮아진다.

이 때문에 로스쿨생들은 대학원에서 전문 지식을 쌓기보다 더 늦기 전에 합격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학부 4년에 로스쿨 3년까지 마친 뒤 변호사 시험까지 탈락한다면 늦은 나이에 다른 일자리를 찾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법대 출신' 로스쿨생들의 비중도 2009년 34.4%에서 2013년 55.4%로 점차 증가했다.〈그래픽 참조〉 이런 추세는 "다양한 학부 졸업생을 뽑아 '경영학을 졸업한 기업 전문 변호사' '공학을 전공한 지식재산권법 전문가' 등을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과는 배치된다. 지방의 한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들이 변시 합격률이 높은 법대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 현상은 로스쿨을 유치한 상위권 대학의 법대 졸업생들이 로스쿨로 진학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상위권 대학들의 법대가 폐지되면서 앞으로는 법대 출신의 로스쿨 진학률이 점차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 24일자 A8면 '[위기의 로스쿨] 實務 경험이 많은 교수 모자라…"인터넷 강사에 판례 배워요"' 기사 중 '서울 지역 법대 출신으로 로스쿨 졸업 후 사법연수원에 최근 입소한 D씨' 부분에서 '로스쿨 졸업 후' 표현은 잘못 삽입된 것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