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여배우에게 악녀(惡女) 역할은 '알고도 먹는 극약'이다. 잘하면 단숨에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될 수도 있지만, 악역 이미지가 대중의 뇌리에 박혀 헤어나지 못하기도 쉽다. 최근 '기황후'에서 악녀 타나실라역을 맡은 백진희〈사진〉는 이런 덫을 피해 만년 기대주를 벗어나 주연급으로 발돋움했다.
◇김태희도 악역으로 시작했다
악녀 연기로 스타가 된 대표적인 경우는 '미스터 Q'의 송윤아, '천국의 계단'의 김태희, '위대한 유산'의 문채원 정도였다. 세 사람 모두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역할로 나왔다.
최근에는 백진희와 이다희가 이런 경우다. 이다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주인공 이보영와 대립하는 검사 역할을 한 뒤 차기작 '비밀'에서 주연급에 캐스팅됐다. 백진희 소속사 스노우볼엔테테인먼트 김진수 본부장은 "몇몇 드라마 주연 제의가 들어오는 것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 섭외도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악녀 역할을 잘 소화하고도 주연급으로 올라서지 못한 경우도 있다. '불새'의 정혜영, '아내의 유혹'의 김서형, '신데렐라 언니'의 서우 같은 경우다. 이들은 실감 나는 악녀 연기로 방송 당시 화제가 됐지만, 차기작에서도 악역 제의가 이어지면서 이미지 변신에 곤란을 겪었다.
◇기존과 다른 모습 보여야 성공
'악역의 늪'을 극복한 여배우들의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작품이 떠야 한다. 이들이 출연한 차기작들은 모두 시청률이 20~40%대를 기록했다.
기존 이미지가 악역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도 관심을 끄는 요소였다. 김태희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 청순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천국의 계단'에서는 각종 악행을 서슴지 않는 인물을 맡아 연기했다. 백진희도 동그란 얼굴형에 귀여운 외모라서 악역에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다. 하지만 사람을 죽일 때 눈을 내리까는 미묘한 표정 연기까지 잘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기황후' 한희 PD는 "시청자들이 백진희가 의외로 악역을 잘 소화한다는 것을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단조로운 악역이 아니라 자신만의 포인트도 있어야 한다. 이다희는 '명분이 있는 악녀' 역할을 구축했다. 질투나 악의를 가지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대의명분을 가진 것이 시청자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캐스팅 디렉터인 조훈연 씨앤에이전시 대표는 "소리를 지르거나 표독한 눈빛 같은 식상한 연기는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외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