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 여론독자부장

지난 2월 하순 발간된 '창작과비평' 봄호에 '진보 진영은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글이 실렸다. 한 소장 정치학자가 쓴 이 글은 진보 좌파가 회피해온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한 보수 언론은 '진보 대표지, 금기를 깨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비중 있게 소개했다.

이 글은 "인권이 진보의 의제인 점을 감안할 때 남한 진보 진영이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객관적 사실로서 북한에 인권 침해 현상이 있고, 인권의 실상이 평균 이하의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남한 진보 좌파가 북한 인권은 '생존권'이 가장 중요하다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교류 협력에 집중해온 점을 생각하면 북한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진보 진영의 북한 인권 논의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판단하면 성급한 결론이다.

이 글은 '진보 진영이 취할 수 있는 대안적 입장'으로 '코리아 인권'론을 제시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따로 떼어서 접근하면 안 되고 남한 인권 문제와 함께 한반도 전체의 인권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 인권을 '코리아 인권'의 하부 단위로 생각하는 발상은 진보 좌파의 이론적 대부(代父)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에 영향받은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한반도는 분단으로 주민의 평화로운 삶과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구조적으로 제약받고 있으며 이로부터 남북한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초래된다는 이론이다.

'코리아 인권'론은 분단체제의 구성 부분인 남한과 북한은 인권 면에서도 온전할 수 없으며, 국제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인권 상황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주민 감시, 종교의 자유 침해와 남한의 사형제, 국가보안법, 병역 거부 처벌을 '정도의 차이'로 인식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더구나 남북한이 사형제 폐지, 노동권 보호, 무기 수출 금지, 상대를 적대시하는 법령 개폐 등에서 '인권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에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지난 2011년 처음 제기된 '코리아 인권'론은 최근 진보 좌파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3월 초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최한 북한인권법 토론회에서 교회협 책임자는 앞으로 북한 인권 논의에서 '코리아 인권'론을 비중 있게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협이 11일 북한인권법에 관한 성명에서 "어떤 나라도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북한 인권만 문제 삼는 것은 북한 사회를 향한 또 다른 폭력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도 '코리아 인권'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 인권'론은 국제사회도 본격 제기하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된 진보 좌파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찾아낸 '물타기·물귀신 작전'이다. '코리아 인권'론의 이런 본질은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해 '인권근본주의' '인권의 타자화'등 납득할 수 없는 논리들을 동원하여 반대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우리 진보 좌파는 온 세계가 걱정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인류적·민족적 양심과 양식에 기초해 바라보는 것이 왜 이다지도 힘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