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조모(20)양은 이번 학기에 전공 실기 수업 정원이 6명인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교수가 1대1로 작곡을 가르치던 수업이 1대6으로 바뀌어 예전 같은 도제(徒弟)식 배움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조양은 "학교에서 재정 압박이 심해 1대1 수업을 그룹식으로 바꿨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4년제 A대학은 작년까지 40명씩 3개 반으로 운영하던 사회학 관련 교양과목을 120명 정원의 1개 반 강의로 바꿨다. 3개 강의를 하나로 합쳐 강사 두 명분의 인건비를 줄인 것이다. 이 학교 학생은 "원래 열띤 문답과 토론으로 유명한 수업이었는데, 지금은 수강생이 120명 이상이라 토론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학의 교육 경쟁력 저하 우려
대통령 공약 사항인 '반값 등록금' 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일각에서는 대학 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값 등록금은 정부가 예산으로 마련한 국가 장학금을 대학에 대거 투입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올해 정부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가 장학금 예산으로 3조4575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대학에 일제히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자 등록금 수입으로 재정의 60~70%를 충당하는 대학들이 정작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지 못해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수도권의 B대학은 올해부터 실험·실습 장비 구입은 물론이고, 오래된 건물 개보수도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는데 등록금은 낮춰야 해 재정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실험 기자재 개선을 요청하는 이공계 학과에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달해 관련 기자재를 보강하라고 전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 150여개 사립대를 대상으로 실습비, 기자재 구입비, 도서 구입비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해마다 학생 1인당 교육 투자가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2011년 37만1000원에 달했던 학생 1인당 기자재 구입비는 2012년엔 33만3000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학생 1인당 실험실습비(16만7000원→16만1000원)와 도서 구입비(11만4000원→10만8000원)도 하락했다.
서울의 C대학은 첨단 기술 연구센터를 위한 거액의 건축비를 마련했지만 반값 등록금 재원 조달이 부담돼 센터 착공을 2년 늦췄다. 학교 관계자는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는 거액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등록금 수입이 동결되고, 장학금 수요가 많은 상황에선 첨단 기술 투자를 줄이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대와 지방대 격차 커질 듯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려면 전국 대학생의 등록금 총액 14조원 가운데 절반을 정부 예산과 학교 안팎의 장학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정부가 편성한 국가 장학금 예산은 지난해 예산(2조7750억원)보다 6825억원 증가한 3조4575억원. 이것만 해도 올해 정부가 편성한 전체 고등교육 예산(8조6520억원)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하지만 국가 부담을 제하고도 각 대학이 등록금을 낮추거나 교내외 장학금을 확대해 3조원을 마련해야만 '반값 등록금'이 가능해지는 구도다. 이에 교육부는 각종 국책 사업 대상을 뽑을 때 해당 대학이 등록금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 대학일수록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경남의 한 대학은 지난해 등록금 액수를 5% 인하해 등록금 수입이 약 40억원 줄었다. 이 학교 교수는 "지방대는 수도권보다 등록금이 싸고 학교 재정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서 재정적 타격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지방의 D대학도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난해 등록금을 5% 인하했다. 학교 재정의 절반을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오던 이 대학은 운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강사를 해고하고, 그 강의들을 전임교수에게 다 넘겼다.
부산의 한 대학 총장은 "지방대는 반값 등록금 부담 때문에 학생들을 위한 투자를 늘릴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가뜩이나 벌어진 서울과 지방 대학 간 교육 격차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값 등록금이 청년실업 키워"
한편 '반값 등록금'이 청년 실업을 가중시키고 경제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반값 등록금이 학력 인플레를 심화시켜 청년 실업이 늘어나고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은 0.51%, 고용은 0.42%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득 재분배 효과는 낮은데 GDP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커질 것으로 예상돼 반값 등록금보다는 취약 계층 중심의 등록금 지원 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국대 김무곤 교수는 "반값 등록금의 여파는 대학의 경쟁력을 반 토막 내는 지독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