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를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은 사실관계 때문에 논란이 없잖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1100만명이나 몰린 건, 극중 송강호가 연기한 변호사상(像)이 준 울림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큰 세태에서 영화는 '바람직한 변호인상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송강호가 법정에서 포효하는 순간은 이 영화의 백미(白眉)다. 그러나 같은 장면에 대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진짜 법정은 그처럼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이유다. 말은 어눌해도 글로 풀어내는 서면(書面)변론이 탁월한 변호사라면 송강호보다 못할 게 없는 곳이 실제 법정이다.

누구도 영화처럼 전지적 관점을 갖지 못하는 현실의 법정. 의뢰인들과 방청객들이 보지 못하는 변호인의 뒷모습까지 볼 수 있는 건 결국 법관들이다. 그 법관들 중 최고봉인 대법관. 그들이 꼽는 '이상적인 변호인'은 대한민국 인구 5분의1을 끌어모은 '변호인'과 어떻게 다를까.

현역 대법관을 뺀 역대 대법관은 124명. 그중 대법관을 퇴임한 지 5년이 안 된 전직 대법관이 단 9명(이달 초 퇴임한 차한성 전 대법관은 제외). 역대 대법관 중 가장 최근까지 재판을 했던 그들에게 물었다. '가장 이상적인 변호인은 누구인가?' 답변을 거절하거나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고 답한 2명을 뺀 7명이 응답을 했다. 우리 법조계 최고 판관들이 꼽은 이상적인 변호인상은 영화와 얼마나 달랐을까.

서울 서초구 대법원 내 대법정.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사건의 변론과 선고가 이뤄진다. 최고의 법관들을 설득하려는 최고 변호인들의 공방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판사를 설득할 줄 알았던 인권 변호사 1세대

전직 대법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이름은 고(故) 황인철 변호사였다. 3명이 그를 꼽았다. 황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 1세대'인 홍성우(76) 변호사도 2명의 추천을 받았다. 황 변호사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비롯해 동일방직사건, YH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임수경 방북사건 등 거의 모든 이념·인권사건 변론을 맡았다. 민변·경실련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는 1993년 암으로 타계했다. 홍 변호사도 민청학련 사건부터 김지하 필화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등 유신과 5공 시절 대표적인 민권사건 변론을 맡았다.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세상에 알린 것도 홍 변호사였다.

두 변호사를 꼽은 A 전 대법관. 그는 "두 분을 꼽은 건 인권 변호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변호사는 판사를 설득하는 사람'이라는 걸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사들이 형사사건의 의미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안 그래요. 어느날 갑자기 사건을 배당받았을 뿐, 판사들은 대부분 사건의 의미, 가치를 잘 몰라요. 판사들에게 그걸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당신이 그래서 잘 판단해야 한다'고 깨닫게 하는 게 변호사지요. 황인철, 홍성우 두 분은 법정에서 투쟁을 하거나 누구를 비난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분들의 변론은 오히려 차분했어요. 하지만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사건의 의미를 알게 해줬습니다."

황 변호사를 꼽은 B 전 대법관은 "법조인의 양심을 지키기 어려웠던 시절 인권 변호사로서 정의감과 열정도 탁월했지만 삶에 대한 태도도 훌륭했다"고 말했다. C 전 대법관은 "변론이 거의 서면으로만 이뤄지던 시절 황인철, 홍성우 두 분의 날카로운 변론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인권 변호사 1세대로 가장 이상적인 변호사로 꼽힌 고(故) 황인철, 그와 쌍벽을 이뤘던 홍성우 변호사, 사적인 인연을 끊고 살았던 고(故) 최상택 변호사, 정실 변론을 기대하며 찾아온 의뢰인을 모두 돌려보낸 황덕남 변호사.

◇'오얏나무 근처엔 아예 안 간다'

대법관들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덕목은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는 투명한 처신이었다. D 전 대법관은 2004년 81세로 타계한 고(故) 최상택 변호사를 꼽았다. 그는 대구지역에선 명변론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매일신문에 실린 그의 변론 에피소드. 같은 범죄를 되풀이하는 누범에게 보호감호 처분을 내리던 1980년대. 한 절도범이 '징역 5년, 보호감호 7년'을 구형받았다. 혐의는 재물 3만원어치 절도였으나 누범이라는 이유였다. 그 절도범의 변호인이 최 변호사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제까지 살면서 딱 두 번 놀랐습니다. 첫 번째가 6·25 때 인민군 대포 소리 때문이고 두 번째가 오늘 검사의 구형을 듣고서였습니다. 검사의 구형은 3만원짜리 물건을 훔친 사람을 12년간 가둬 달라는 말씀인데, 우리 주위의 수천만원대 사기, 횡령이나 뇌물 범죄에 비하면 가당치도 않은 것 아닙니까?"

느릿느릿하지만 논리적인 그의 변론에 검사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그를 꼽은 D 전 대법관은 "탁월한 변론 능력보다 더 존경스러운 것이 꼬장꼬장한 지조"라고 말했다. "그분은 어떤 사적인 인연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법정에서의 변론만으로 승부했어요.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도 각종 동기회와 법조계 공식 모임조차 나가지 않아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죠."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李下不整冠)이라고 했지만 최 변호사는 아예 오얏나무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E 전 대법관도 같은 관점에서 여성 변호사인 황덕남(57) 변호사를 꼽았다. 황 변호사는 대법관 후보로 꼽혀온 법조인이다. "황 변호사에겐 모 대법관 관련 사건을 맡아달라는 의뢰인들이 몰렸어요. 두 사람의 친분을 알고 온 거죠. 하지만 그는 수임을 모두 거절했어요. 해당 대법관 사건을 단 한 번도 맡지 않았습니다. 황 변호사는 누구나 인정하는 탁월한 변호사예요.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런 모습을 변호사들이 알았으면 해요."

◇"잘하는 사람보다 잘못하는 사람 꼽기가 더 쉬워"

전직 대법관들의 답변 중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잘하는 분을 꼽기는 어렵지만, 누가 형편없느냐를 꼽으라면 금방 꼽겠다"는 것이었다. 한 전 대법관의 말. "수임료 때문에 여러 건을 하다 보면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재판에 오는 변호사가 적잖아요. 상대방 증인에 대해서 제대로 신문도 못하고 재판장의 질문에 그저 당황만 하죠." 또 다른 대법관도 "서면변론서를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엉망인 변호사들이 있다"고 말했다.

F 전 대법관이 꼽은 올해 81세의 이영구 변호사는 사건의 맥락과 배경, 의뢰인의 절실함까지 완벽하게 전달하는 열정적인 변호인이었다. F 전 대법관은 "법조인이 되면 법률 쟁점만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좋은 변론이라고 배운다"고 말했다. 법정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실제 법정에서의 변론은 법리라는 뼈대만 앙상한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그 분의 서면변론서는 사건의 맥락과 법률 쟁점이 잘 정리된 건 기본이고 의뢰인의 안타까운 상황, 사건의 배경 등이 잘 담겨 있었어요. 서면변론으로도 법정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G 전 대법관은 "900쪽짜리 상고이유서를 단숨에 읽게 만든 변호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명쾌한 법리, 주장의 설득력 등 모든 것이 완벽해 무릎을 치면서 읽었다는 것. 그중 한 명이 노영보(60) 변호사. 고법 부장판사 출신으로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에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의 변호를 맡아 최종 무죄를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G 전 대법관은 "국가보안법 사건을 주로 맡는 최병모(65) 변호사의 상고이유서도 감탄하면서 읽은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두 변호사의 서면에는 법리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인문학적 식견이 녹아 있었다"고 말했다.

설문에 응해 주신 전직 대법관·부임順

김용담·김영란·박시환·김지형·이홍훈·박일환·전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