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판소는 우리나라 법원과 똑 닮았다. 독일과 영·미 사법을 흉내 낸 일본 제도를 우리가 다시 베낀 탓이다. 일본도 우리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를 정점으로 고등재판소(고등법원)와 지방재판소(지방법원)를 두고 있다. 판사보(補) 등을 포함하면 판사 수는 총 3700명쯤 된다. 법원 제도뿐 아니라 '사회 최고 엘리트'로 불리는 이들의 위상도 한국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런 일본 재판소를 '정신적 수용소'로, 판사를 '수용민'으로 비유하며 사법계를 가감 없이 비판한 책 한 권이 요즘 일본에서 화제다. 최근 발매와 동시에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세기 히로시(瀬木比呂志·60)의 책 '절망의 재판소'〈사진〉다.

세기 히로시는 도쿄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2012년 메이지(明治)대 교수가 되기 전까지 30년 넘게 판사로 일했다.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그런 엘리트 판사 출신이 "재판소에 정의를 요구해도 돌아오는 것은 절망뿐"이라며 친정의 치부를 폭로한다. 그는 "일본 재판소와 판사는 '공정' '중립' '올바름' 같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며 "최고재판소 간부가 판사들의 사상마저 통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재판소는 폐쇄적인 '영적 수용소 군도'라 부른다.

세기 히로시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재판소는 인사 비리와 권력투쟁, 폭언과 성희롱이 난무하는 '여느 기업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또 사건을 처리하는 기계인 판사들은 극단적 학력주의에 빠져 있고, 때로는 교만과 질투에 빠져 동료를 시기하거나 따돌리기도 한다.

과거에도 법원을 비판하는 책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엘리트 판사 출신이 거침없이 친정을 비판하자 일본 독자들은 더욱 열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