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의 한 야산. '왱' 하고 엔진 톱날이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온 산을 휘감았다. 15m 높이 아름드리 잣나무가 여기저기서 '쿵' 하고 쓰러졌다. 밑동이 잘린 잣나무를 인부들이 다시 1m 간격으로 잘라낸 뒤 장작더미를 만들듯 차곡차곡 쌓았다. 훈증(유독가스로 살충·살균하는 것)용 약품을 친 뒤 초록색 비닐 덮개를 씌워 '잣나무 무덤'을 완성했다. 방제 작업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이곳에는 벌써 잣나무 봉분 60여개가 만들어졌다. 흡사 잣나무 공동묘지로 변해버린 듯했다. 산 둘레는 '재선충 감염목 이동 금지'라고 쓰인 경고 현수막이 휘감고 있었다.

이날 작업을 감독한 김진배 산림조합 경영지도과장은 "과거 유행했던 솔잎혹파리 피해가 재래식 폭탄 수준이라면, 재선충은 핵폭탄이라고 보면 된다"며 "감염 즉시 이상이 나타나는 소나무와 달리 잣나무는 2년 정도 잠복기가 있어 감염 위험이 있는 나무를 사전에 벌채하는 것이 최선의 방제 방법"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4월 초까지 예산 12억원을 들여 2만 그루를 잘라 훈증 처리하는 걸 목표로 잡았다.

지난달 26일 오후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현장에서 방제 작업원들이 감염된 소나무를 자른 뒤 약품을 뿌려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 훈증 처리된 소나무 토막들에 초록색 비닐 덮개를 씌운‘소나무 무덤’들이 작업원들 뒤에 많이 보인다.
지난달 26일 오후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현장에서 방제 작업원들이 감염된 소나무를 자른 뒤 약품을 뿌려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 훈증 처리된 소나무 토막들에 초록색 비닐 덮개를 씌운‘소나무 무덤’들이 작업원들 뒤에 많이 보인다.

'소나무 에이즈'로도 불리는 재선충병이 전국 13개 시·도의 81개 시·군·구로 확산돼 비상이 걸렸다. 2011년부터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기승을 부리더니 작년과 올해 들어서는 수도권 지역으로까지 확산됐다.

이 병은 소나무와 잣나무에 주로 발생하는데, 제주·경남 등 남부지역에는 소나무나 해송이 많고, 경기도 등 중부지역에는 잣나무가 많아 전국이 재선충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월동 중인 2월부터 3월 말까지 재선충 부화를 차단하는 것에 그해 방제작업 성패가 달려있다. 전국 60여개 시·군·구는 방제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요즘 매일 50그루 이상을 훈증 처리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낮 12시 30분쯤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초정장수회관 뒤 백두산 자락.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인부들이 잘라낸 소나무 토막들을 훈증하기 위해 쌓고 있었다. 초정리 뒤편 백두산 곳곳엔 '빨간 새치'가 보였다. '빨간 새치'는 재선충병에 감염돼 초록빛 솔잎들이 빨갛게 말라 죽어 있는 모습을 빗대 하는 말이다. 재선충은 대동면 외에 주촌, 한림면 등 김해시 전역 산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장 지도 중인 산림청 조경금 주무관은 "재선충병 감염 소나무는 김해지역에만 20여만 그루에 이른다"고 했다.

재선충 감염 소나무 제거 방법은 훈증과 파쇄 등 크게 두 가지다. 파쇄는 베어낸 나무를 실어내 잘게 자른 뒤 압착해 덩어리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를 불을 땔 때 장작처럼 사용한다. 파쇄는 큰 도로 주변이나 대형 트럭 접근이 용이한 지역에 있는 감염목을 대상으로 한다. 훈증은 진입로가 좁고 산 위에 있는 감염목에 대해 시행하는 방법이다.

현재 소나무 재선충병 발생현황.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재선충병 피해를 입었나.
현재 소나무 재선충병 발생현황.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재선충병 피해를 입었나.

그러나 요즘 전국의 재선충 방제 현장은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재선충 방제를 위한 벌목 및 훈증은 국유림·사유림을 가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일부 사유림의 토지주들이 "내 땅에 있는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8일부터 자체적으로 재선충 방제작업을 시작한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도 주변 토지주들이 동참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석영한 곤지암리조트 전무는 "예산 1억5000만원을 들여 잣나무 800그루를 베어내 훈증 처리하고, 재선충 예방주사도 9000그루에 놓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주변 토지주들은 '멀쩡한 내 나무를 베기 싫다'며 수수방관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산림 전문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주변 닭·오리를 강제 살처분하듯, 사유림에 대한 재선충 방제도 강제로 할 수 있도록 법이나 조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

솔수염하늘소가 소나무 잎을 갉아 먹을 때 이 하늘소에 기생하는 소나무재선충이 나무에 침입해 양분 이동 통로를 차단, 한 달 내에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