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회 편집국 부국장

통일(統一)이 뭔지도 모른 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며 컸던 세대가 있다. 전쟁도 모르고, 민족 분단의 아픔도 못 느끼면서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흥얼거렸다. 밤낮없이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을 이~루자'라는 곡을 들었다. 1950년대 중후반, 196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통일 교육을 받은 첫 세대이다.

'통일은 나라 살리는 것'이라고 교육받았던 이들은 경제적 성공이란 점에서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40대 초입이던 1997년과 50대에 접어든 2008년, 각각 IMF 국가 부도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았던 '사오정'(40~50세가 정년), '오륙도'(50~60세에도 직장 다니면 도둑놈) 세대였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로 경쟁은 치열했고, 성공의 과실(果實)도 작았다.

말로만 '통일'을 외쳤던 주입식 교육 탓이었을까. 이들의 통일에 대한 신념과 가치는 얇았다. 1970년대 말 유신시대의 종식, 1980년대 중후반 민주화 물결이 출렁이면서 종잇장 같은 통일관은 개인별·이념별·지역별로 갈라지고 쪼개졌다.

이들은 1968년 이승복 사건을 잘 알고 있다. 1959년생인 이승복은 초등학교 2학년 자신의 생일(12월 9일)에 북한 무장공비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분단 첫 세대에게 이승복은 친구나 선후배였다. 그러나 민주화 물결 속 종북 좌파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을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라는 비아냥으로 변질시켰다. 같은 세대끼리 만나면 '통일 vs 반(反)통일 세력'으로 찢어졌고, 통일은 친구 사이에 기피 주제가 됐다. 통일 교육 첫 세대가 통일 무관심 세대로 바뀐 지 오래다.

2014년 들어 통일 논의가 한창이다. '통일은 대박'(박근혜 대통령), '한반도 통일은 불가피할 것'(하토야마 일본 전 총리), '한국민은 통일이라는 역사적 도전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 3~4일 열린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 참가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은 시기·방법의 문제일 뿐"이라며 통일을 기정사실화했다.

통일이 정해진 것이라면 누군가 대비해야 한다. 정부가 북한개발기금을 만들고, 청와대가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든다 해도 누군가는 주역으로 나서고 주변에서 밀어주고 끌어줘야 할 일이다. 사오정 세대, 이승복 세대에게 새 역할이 주어진 이유다. 통일 교육 1세대가 통일 무관심 세대로 남아서야 제대로 된 통일은 불가능하다. 6·25전쟁이 남북한끼리 동족상잔(同族相殘)했던 사실조차 모르는 10~20대에게, 스펙 쌓아 대기업 샐러리맨이나 공무원 되는 게 소원인 20~30대에게, '남은 인생은 좀 편히 살자'는 노(老)세대에게 통일 문제 해결을 전가할 수는 없다.

전후 첫 세대는 글로벌 경제무대에서 힘겹게 싸우며 살아남았다. 국내외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주역이 됐다.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통일 주역의 역할이 더 주어졌지만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1989년 '내 생전에 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했지만 다음 해 독일 통일을 목격했던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일화처럼 한반도 통일 역시 새벽 도둑처럼 조용히 갑자기 찾아올 것이다. 어차피 들이닥칠 일이라면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분단 후 첫 세대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