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을 해독시켜 수명(壽命)을 연장하자!'
1959년 신문 3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금연약 '안티 스모킹'의 광고는 애연가들을 겁주기에 충분했다. '니코틴이 폐암과 심장병을 유발하며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미국·영국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흡연과 목숨을 연결시켰다. 오늘날엔 '국민 상식'이지만 당시로선 흔히 듣던 정보는 아니었다(조선일보 1959년 6월 1일자). 1950년대 초반까지도 흡연을 치명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보편적이었다. 신문 지상에서 담배의 해악에 관한 보도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미 국립 암(癌)연구협회가 폐암과 끽연은 무관하다고 밝혔다'는 식의 무해론이 가끔 눈에 띈다(1954년 12월 2일자). 치과의사가 '니코틴의 살균력이 충치를 막아 준다'(1936년 8월 30일자)며 다소 황당한 '흡연 유익론'을 폈던 1930년대만큼은 아니어도, 흡연자들을 안심시키는 정보들이 우세했다. 외신면엔 '세계 빠이프 흡연 선수권대회에서 덴마크인이 99분 15초간 흡연해 우승했다'는 기사도 보인다(1955년 3월 31일자). 몇 차례 범사회적 금연 운동이 있었지만 '건강 지키기'라기보다는 '돈을 아끼자'는 차원이웠다. '영미인(英美人)은 끽연과 폐암과의 관계 유무를 운운하지마는, 우리는 경제적으로 단연(斷煙)·절연(節煙)하여야 할 처지'라 했던 조선일보 칼럼 '일사일언'은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1955년 7월 16일자).
1950년대 후반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흡연의 치명성'을 알리는 기사와 광고가 늘어났다. '흡연을 너무 많이 한 사람의 사망률은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들의 거의 두 배'라는 미국발 외신 기사는 독자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1959년 8월 7일자). 신문 문화면은 '사탕을 먹어라' '뜨개질을 하라' 등 10가지 금연 요령을 소개했다(1959년 4월 20일자). 이 같은 담배 유해론의 확산 물결을 타고 1959년 신종 '금연 상품'들이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노 스모킹'이라는 금연 보조제는 '담배의 맛이 전연 소실되며 일 주 이내로 완전 금연됩니다'라고 큰소리쳤다. 광고엔 담배 한 개비를 철창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운 그림을 넣었다(1959년 9월 23일자). 입 안의 니코틴과 세균을 제거해 준다는 '한국 최초의 흡연자용 치약'까지 발매됐다(1959년 9월 16일자). 이에 맞서듯 전매청의 광고도 많아졌다. 새 담배 2종을 '애용해 달라'는 광고를 신문 1면 하단 전체에 가득 채워 실었다(1959년 9월 12일). '많이 피워 재정 수입을 늘려 달라'는 당국과 금연론자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