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봉기'가 도대체 뭡니까?"

서울 한 사립대 사학과의 A교수는 며칠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봉기(蜂起)'란 '벌 봉(蜂)'에 '일어날 기(起)'자이니 '벌떼처럼 많은 사람이 들고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역사학과에 지원하면서 그런 것도 몰랐느냐'고 핀잔을 주려다 보니 주변의 학생들 모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자어 모르면서 역사 공부하는 학생들

학생들이 잘 모르는 역사 용어는 이것 말고도 많았다. '선비가 화를 입은 일'이라는 뜻의 '사화(士禍)'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인 단체'란 뜻의 '붕당(朋黨)' '서양 세력이 일으킨 난리'라는 뜻의 '양요(洋擾)'…. 심지어 '싸워서 크게 이겼다'는 뜻인 '대첩(大捷)'이란 말을 '크게 싸웠다'는 대전(大戰) 정도의 의미로 잘못 알고 있는 학생도 많았다.

해당 어휘의 한자를 알았더라면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교과서에 한글로만 쓰여 있다 보니 뜻도 모른 채 외우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A교수는 "그렇다고 저걸 '무오년에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 '병인년에 서양 세력이 침공해 와서 전투를 벌인 사건' 같은 식으로 다 풀어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뜻풀이 못해 영어 단어 외우듯 무작정 외워

역사 과목뿐이 아니다. 수학의 경우 '등호(等號)'나 '대분수(帶分數)'란 용어를 처음 배울 때 한자어의 뜻까지 함께 배워 '서로 같음을 나타내는 부호' '정수가 분수를 지니고[帶]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이해가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과학 과목에서도 한자를 알면 '양서류(兩棲類)'를 '땅과 물 양쪽에서 모두 서식할 수 있는 무리' '설치류(齧齒類)'를 '이빨[齒]로 물건을 갉는[齧] 무리'로 쉽게 이해하고, '수지상(樹枝狀) 세포'의 '수지상'이 '나뭇가지 모양'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자를 모를 때는 용어를 일일이 암기해야 한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고교 교과서의 색인(찾아보기)에 나오는 용어 중 한자어의 비율은 한국사 96.5%, 사회 92.7%, 생물 87.2%, 물리 76.2%, 화학 64.5%였다. 중학교 교과서에선 과학 76.2%, 수학 81.1%, 도덕 91.4%였다.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한자는 '한문' 시간에만 가르치게 돼 있는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전 과목 교과서 어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그저 영어 단어 외우듯 소리글자로 그 뜻을 익힐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는 "대부분 한자로 된 지식 용어를 한글만으로 표음(表音)해 학습하면 그저 들은 풍월로 어렴풋이 알게 된다"며 "결국 말을 해도 자신감이 없고, 글을 써도 정확성을 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국어사전 찾으면 오히려 더 어렵다?

'잘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되지 않느냐'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서도 "지금 나온 사전을 찾아보면 더 헤맬 때가 많다"는 반론이 나온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과 교수는 "아무리 새로운 단어가 나올 때마다 국어사전을 찾는 학생들이라 해도, 막상 사전을 읽어 보면 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리 시간에 나오는 '해일'이란 말의 뜻이 궁금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해저의 지각 변동이나 해상의 기상 변화에 의하여 갑자기 바닷물이 크게 일어서 육지로 넘쳐 들어오는 것. 또는 그런 현상'이라 돼 있다. '해일(海溢)'의 뜻이 '바닷물이 넘친다'는 것이란 기본적인 의미 정보가 없으면 이해가 더 어렵게 되는 셈이다.

수학 교과서에 실린 '타원'이란 용어는 사전에 '평면 위의 두 정점(定點)에서의 거리의 합이 언제나 일정한 점의 자취. 정점과 정직선으로부터의 거리의 비가 일정한 점의 자취로, 이 두 정점을 타원의 초점이라고 하고, 정직선을 준선이라고 한다'고 난수표처럼 돼 있다. 하지만 '타원(楕圓)'이 '길쭉한[楕] 동그라미[圓]'라는 걸 알면 훨씬 쉽게 된다. 결국 한자어의 뜻을 제대로 배우지 않기 때문에 너무 먼 길로 돌아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