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학자들과 '집현전 프로젝트'를 할까 해요. 안상수 교수가 조기 은퇴하고 파주에 만든 작은 대학 '파티'처럼."

35년의 연세대 교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조한혜정(66·인류학·사진) 교수는 "은퇴한 지식인들이 고사(枯死) 직전의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빈곤'이 더 큰 문제지요.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한 엄마가 독감에 걸려 누웠는데 친정엄마가 올 때까지 자기는 물론 아이들까지 꼬박 이틀을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거예요. 이웃이 의미가 없는 거죠. 마을 단위의 작은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이 절실합니다."

조한 교수는 1980년대 한국 진보 운동 진영에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청바지에 맨발 차림으로 강단에 서서 "너희가 하고 싶지 않으면 (민주화 운동) 안 해도 된다"고 말해 '부르주아'라는 비난을 받았다. 1세대 페미니스트이지만 기존 여성운동계에서도 튀었다. 제자 나윤경 교수는 그의 정년 기념 문집에 1980년대 강의실의 '비화'를 털어놨다. "교수님이 '성폭행당했다고 울고불고할 거 뭐 있나. 샤워하고 털어버리면 되지'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지요." 조한 교수는 진심이었다고 했다. "미친개에게 물렸다 생각하면 되지 자학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그래야 가해자도 신고하고요. 통념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해요."

조한 교수는 평생을 '마을 만들기'로 대표되는 공동체 운동에 전념해왔다. 여성주의 동인 그룹 '또 하나의 문화'를 비롯해 탈(脫)학교 청소년을 위한 '하자센터' '성미산학교' 등을 창조적 공동체(creative commons)라고 자부한다. "'왜 좋은 어린이집이 없지? 좋은 학교가 없지?' 푸념만 말고 머리를 맞대라는 거죠. 타이타닉에 맞설 '노아의 방주'를 많이 만들어야 해요. 그런 자조(自助) 모임을 국가가 지원해야 하고요.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국가에 맡기라는 식의 관리·통제 개념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인 조한 교수는 "선비로 살고 싶었다. 남자로 치면 정약용 같은 멘털을 지닌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