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보통 한 달에 한 번쯤 빡빡한 일정으로 출장을 떠난다. 간혹 계획한 일들을 마치고, 밤 시간을 이용해 출장 간 곳에 살고 있는 친구나 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빡빡한 일정이긴 해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반가운 이들을 만나는 건 월스트리트 사람들에게는 출장이 주는 즐거운 보너스다. 지난 1월 폭설로 힘들게 떠난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 대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했다. 오랜 친구가 좋은 건 허물없이 속에 있는 말까지 다 꺼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 같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도 말이다.

1월 말이라는 시기 때문이었는지 당시 화제는 올해의 ‘보너스’였다. 친구는 보너스가 통장에 들어오는 2월 15일 아침 7시, 입금을 확인하면 그 순간 사직서를 낼 것이라는 비밀도 털어놓았다. 보너스를 받고 하루는 고사하고 단 한 시간조차 기다리지 않고 사표를 낸다는 게 한국 사회에서는 극단적인 경우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금융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아마 친구를 새로 고용한 회사조차 그가 그럴 것임을 예상했을 것이다. 아니, 그러길 기대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 은행들은 주로 1~2월에 보너스를 준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최소한 한 번쯤은 이를 기사화한다. 월스트리트의 연봉은 대개 기본급과 보너스로 나뉜다. 월스트리트의 연봉이 다른 업종과 크게 다른 점은 맡은 업무와 성과에 따라 보너스가 적게는 기본급의 30%에서부터 많게는 몇십 배까지 준다는 것이다.

한 직장에서도 많이 받아가는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 간 차이가 엄청나다. 참고로 미국 인터넷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의하면 올해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평균 보너스가 42만7000달러(약 4억5280만원)였다. 이는 지난해보다 5%쯤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보너스가 지난해보다 5% 줄었다고는 하지만, 보너스만 연 42만7000달러라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럽고, 놀라운 숫자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과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서 등 골드만삭스의 모든 직종을 다 합친 직원들의 평균 보너스가 한국 돈으로 4억5280만원을 넘는다. 골드만삭스의 이 같은 보너스는, 골드만삭스는 물론 월스트리트를 미국의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과는 아주 다른 세상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월스트리트 밖의 사람들에게 월스트리트는 아주 불편하고 못마땅한 곳으로 변해 버린다. 특히 2007년 금융위기나, 2012년 JP모건에서 발생한 20억달러 이상 트레이딩 손실 사건 등이 터지며 월스트리트의 초고액 보너스가 사람들의 반감을 높이고 있다. 이런 반감 때문인지 미국과 유럽에서 투자은행들이 보너스에 대한 제한을 다른 형태로 주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월스트리트는 보너스를 철저히 실적에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올해 지급해야 할 보너스를 향후 3~4년에 걸쳐 지급하거나, 심지어 내년 실적이 좋지 않으면 올해 줬던 보너스를 다시 빼앗아 오는 시스템까지 도입했다. 이렇게 하면 한 해 반짝 실적을 올린 사람이 비상식적으로 많은 돈을 가져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의 매니저나 트레이더들이 많은 보너스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 남보다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건 남보다 많은 위험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너스 제한’이 월스트리트의 매니저나 트레이더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과하게 위험을 부담하는 것까지 제한하진 못하는 단점이 여전하다.

반면에 유럽은 투자은행의 보너스에 상한선을 두는 법까지 만들었다.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고소득자들에게 기본급의 100%로 보너스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 법을 만들자 유럽의 투자은행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을 지키기 위해 투자은행들이 갑자기 고위 임직원들의 기본급을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여전히 높은 연봉(보너스)을 가져가게 했다.

돈을 다루는 게 직업인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자신들의 돈을 지키기 위해 금융위기 이후 지난 몇 년간 필사의 노력을 해왔음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지만 그 노력의 성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뉴욕 금융업 종사자들의 연평균 소득이 이를 증명한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뉴욕 금융업 종사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40만1500달러였다. 이것이 2013년 36만700달러가 됐다. 6년 만에 임금이 약 10%쯤 줄어든 것이다. 2014년에도 역시 5%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많은 엘리트들이 금융업계를 선호하였다. 이 같은 성향은 1990~2000년대에 더욱이 두드러졌다. 이 당시 미국 최고 MBA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은 당연히 월스트리트로 가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월스트리트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근로조건, 거기에 점점 줄어드는 연봉 때문인지 미국 최고의 MBA에서 공부하는 엘리트들의 월스트리스행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이들은 정보·기술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하버드대 MBA의 예를 들면, 2012년 정보·기술기업행을 택한 학생은 12%에 불과했지만 2013년 이 수치가 18%로 증가했다. 반면 2012년 금융계를 선택한 학생이 35%나 됐지만 2013년에는 이 수치가 불과 27%로 급감한 것이다. 하버드대 MBA만이 아니다. 2013년 처음으로 미국 최고의 MBA 졸업생들이 금융계보다 정보·기술기업 취업을 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사실 미국 내 최고 MBA 졸업생들의 평균연봉을 따져 보면 여전히 일반 기업에 비해 금융계가 25% 이상 높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 내 최고의 MBA 졸업생들이 정보·기술기업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기술기업 중에서도 이제 막 시작하는 벤처(start-up)기업으로의 취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는 많은 MBA 졸업생들이 당장 많은 현금을 받을 수 있는 금융계나 기업보다,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식이나 옵션 같은 보상을 더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면서 사실 가장 회의가 드는 경우 중 하나가 ‘연봉의 크기에 대한 상식적 이해를 잃는다’는 것이다. 매년 이맘때 누군가가 엄청난 액수의 보너스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미 상당한 보너스를 받았음에도 더 큰 액수의 보너스를 받았다는 이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리고 기쁘고 감사해야 하는 순간을 불평 가득한 순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월스트리트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만큼은 얼마가 됐든 무엇보다 감사하고 즐겁게 보너스를 받았으면 한다.

[- 더 많은 기사는 2월 24일 발매된 주간조선 2295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