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취임 1주년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도 오래전부터 하나씩 준비해 나가서 성공적인 통일 시대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4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및 경제관계장관회의 연석회의에선 마지막 동독 총리였던 로타어 데메지에르 전(前) 총리와 대화했던 부분을 소개했다. 박 대통령이 독일이 통일됐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에 대해 묻자 데메지에르 전 총리는 "정보, 정보, 정보"라고 세 번 강조하며 "(서독이) 동독을 너무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너무 동독 주민과 동독에 대해 몰랐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남북 간에 뭘 해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과연 우리가 동서독이 교류했던 만큼 하고 있느냐"면서 "우리는 더 잘 알아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서독 기민당은 정부 수립 직후 통일을 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민족의 과제로 인식하고 우리 통일부에 해당하는 전독문제성(全獨問題省·이후 내독관계성으로 명칭 변경)을 설립했다.

동·서독은 1970년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와 동독 빌리 슈토프 총리 정상회담 이후 교류·협력을 증진시켰다. 국경 통과 협정(1971년 12월)과 기본조약 체결(1972년 10월) 이후부터 경제·우편 통신·교통·문화·교육·학술·문학·출판물·스포츠·언론 등 전 분야에서 교류가 활발히 추진됐다. 1972년 이후 1970년대 말까지 연평균 300여만 명의 서독인이 동독을 방문했고, 평균 140여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을 찾았다.

동·서독은 1976년 우편·통신협정을 체결했으며, 통일 직전에는 동·서독 전 지역에서 직통전화 연결이 가능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동·서독 도시 간에는 자매결연이 이뤄져 1989년 12월 기준으로 모두 62개 도시가 상호 자매결연을 했다.

1972년 이후 동독은 28개 언론기관에 대해 특파원 상주를 허가했고, 서독에도 6명의 동독 특파원이 주재했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방송에서 보도하는 동독 관련 기사들로 동독 내 실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독 정부는 동독의 고속도로, 철로, 수로, 환경보호 프로젝트 등의 인프라 시설 개선 사업에도 투자했다. 통일 이전 동·서독 국경을 따라 7개의 철도 노선, 9개의 도로, 2개의 내륙 수로가 연결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