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女風)당당'. 최근 발표된 각종 입시·진학 결과를 요약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서울대에 따르면 2014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중 여학생 비율은 41%로 2012학년도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작년 말 해군사관학교가 공표한 수석·차석 합격생은 각각 여생도였다. 같은 해 11월에 발표된 제55회 사법시험 수석도 24세 재원(才媛)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풍을 일으킨 주역 3인의 전언을 모았다.
유민정… 모르는 건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어
유민정(21)씨는 지난해 12월 '기술고시 최연소·수석 합격' 명패를 동시에 달았다. 그는 2013년 5급(기술) 공채 전체 합격생 81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강원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데다 고시 준비 기간도 1년이 채 걸리지 않은 덕분이다. 또 유씨는 각 직렬 수석 16명, 전산직렬 합격생 6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고시 준비법은 꽤 대담했다. 공부 장소를 본인이 편하다고 느끼는 강원 평창군 자택으로 선택한 것부터 그렇다. 다른 고시생처럼 학원에 들락거린 적도 없다. 암기량이 만만찮은 공부지만 내용을 일일이 공책에 쓰면서 정리하진 않았다. 대신 외울 부분은 이해될 때까지 계속 읽었다. 이처럼 독서를 기반으로 한 공부법은 대학생 시절부터 몸에 밴 것이다. "전 학교 시험을 준비할 때도 수업 교재를 많이 읽었어요. 교수님이 책 내용을 요약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로는 부족하다 느꼈거든요. 또 모르는 게 생기면 그때그때 교수님을 찾아 질문하고 인터넷을 뒤졌죠. 조금씩 제 지식 영역을 넓혔던 게 2차 시험 준비에 도움됐어요. 2차 시험 과목은 대학 전공 수업 내용과 겹치는 게 많거든요."
유씨는 대학 시절 한 여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에 용기를 얻어 전산학과 진입을 선택했다. "인턴이나 정부 차원의 육성 프로그램 등 여성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기회가 많다"는 것. 그는 "여성에게 과학계는 '블루오션'"이라며 "개척 정신을 갖고 뛰어드는 이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독려했다.
홍다혜… 소프트 파워 시대, 여성들이 도전해야
홍다혜(24)씨는 지난해 처음 치러진 '2013년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시험 형식은 이전 외무고시와 비슷하다. 단, △영어·제2외국어 과목 점수가 공인어학시험 성적으로 대체되고 △통합논술 과목이 신설된 점 등이 다르다. 통합논술은 경제학·국제법·국제정치학 분야가 융합된 문제가 출제됐다. 홍씨는 "세 분야가 중첩된 환경·무역 관련 지식을 중점적으로 훑었다"고 귀띔했다.
세계 각지를 누비는 외교관의 삶은 여성에게 녹록지 않다. 홍씨는 외교관 선배 말을 들며 "예전엔 한 기수에 여성 외교관이 한두 명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반면 이번 시험 여성 합격자 비율은 60%에 육박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여성 외교관의 장점인 '소프트 파워'를 발휘할 일이 많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엔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하드 파워'가 중요했다면 이젠 한류나 스포츠 외교 등에서 발휘되는 소프트 파워가 대세랍니다. 1년간 어학연수 차 머문 멕시코에서 수많은 K팝 팬들을 보며 이를 피부로 느꼈죠." 홍씨는 이어 "성별이나 신체적 차이에 지레 겁먹지 않고 꿈에 시간과 노력을 붓는 여성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경… 억지 공부 대신 휴식으로 집중력 UP
정혜경(19)씨의 모교인 서울과학고는 그가 입학하던 2009년 3월 전국단위 과학영재학교로 전환했다. 정씨가 속한 학년 정원 120명 가운데 여학생은 고작 넷. 기존 30명 선에서 급격히 줄어든 수치였다. 정씨는 같은 처지의 후배에게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여학생은 소수"라며 "('어려운 길'이라 말리는 등의) 주변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씨의 호기심은 생물학·문학 등 방계(傍系)로 뻗어 있다. 그는 초등생 때 최재천(60) 이화여대 교수가 쓴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를 읽고 생물학을 제대로 배우기로 결심했다. 미국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1922~2007) 작품을 탐독할 만큼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수시로 "감수성 뛰어난 의과학자가 되겠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반면 한곳에 집중하는 능력은 약한 편이다. 그는 억지로 책상에 앉아있기보단 공부와 휴식을 각각 짧게 반복하며 서서히 수능 대비에 돌입했다. 그 결과 2014학년도 수능에서 표준점수 546점을 얻어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수학은 시작도 끝도 기출문제"라는 그는 "단원별·연도별로 분류된 기출문제를 종횡으로 풀어보라"고 조언했다. 또 과학탐구 과목에 대해선 "대부분 문제집 수준이 비슷하니 최대한 많은 문제가 수록된 참고서를 골라라"고 귀띔했다.
☞참가자 소개
유민정|2013년 기술고시 전산직렬 수석, KAIST 전산학과 4년
홍다혜|제1회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수석, 서울대 외교학과 4년
정혜경|서울대 의예과 입학예정, 2014학년도 수능 표준점수 546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