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정부 시위대와 경찰의 유혈 충돌로 100여명이 사망한 우크라이나에서 정부 측이 사태 수습을 위해 조기 대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정세 불안이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대해 21일 국민의 '여행 자제'를 권고하는 여행경보 2단계를 발령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0~21일(현지 시각) 양일간 수도 키예프에서 주요 야당 지도자, 유럽연합(EU) 대표인 프랑스·독일·폴란드 3국 외무장관, 러시아의 인권 담당 대통령 특사 등과 긴급 회담을 갖고 사태 수습 방안을 마련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1일 "시위대가 요구하는 조기 대선과 헌법 개정을 수용하겠다"며 "야당 인사가 포함된 거국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대가 20일(현지 시각) 수도 키예프에 있는 독립광장을 점거한 채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경찰과 보안군이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야당 측은 이 제안에 동의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날 합의에 따라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시위대 측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믿을 수 없으며 혁명은 계속될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앞서 정부와 야권이 '임시 휴전'에 합의하고도 유혈 사태가 발생한 바 있어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20일 키예프 일대에서는 경찰·보안군이 시위대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총격전이 발생, 사망자가 100명 이상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991년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최대 참사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경찰과 군대에 총기 사용을 허가했으며, 현지 TV 방송에선 군인들이 시위대에 총을 쏘며 진압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러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이를 강하게 비판했고, 야누코비치가 결국 수습안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보안군을 키예프 시내에서 즉각 철수하고 평화 시위를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야누코비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강경 진압 책임자들에 대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의 28개 회원국 외무장관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재를 결의했다. 시위 진압 결정에 참여한 각료들의 입국을 불허하고 이들의 EU 내 금융계좌 거래를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반면 러시아는 시위대를 비난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과격 시위대들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무력 충돌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며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전화 통화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21일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예정되어 있던 20억 달러의 차관 지원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한편,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마케옌코 시장은 20일 여당을 탈당하고 시위대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성명에서 "인명은 가장 높은 가치"라며 "키예프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개인적 책임을 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을 'CCC'로 한 단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