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커피 전문점에서 옆 좌석 고교생들 대화를 듣게 됐다. 화제는 고가 패딩 점퍼였다. 아버지가 대학 합격 선물로 캐나다구스 점퍼를 사줬다는 남학생의 자랑을 시작으로 몽클레르·노비스·에르노 등 외국 고가 점퍼 브랜드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자리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성 3명이 앉더니 또 고가 점퍼 얘길 이어갔다. 몽클레르를 사 입었다는 한 여성은 "실은 이거 몽클레르 키즈(아동용)야. 이게 어른 것보단 조금 싸거든. 그래도 100만원 가까이 해"라며 뿌듯해했다.
이번 겨울 한국에서는 100만원을 넘나드는 고가 점퍼가 불티나게 팔렸다. 캐나다구스는 지난해보다 8배 넘게 판매량이 뛰었다. 캐나다구스 수입사는 매출액이 2010년 132억원에서 2011년 215억원, 2012년 432억원,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2배가량 뛴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구스 이전에 고가 점퍼 열풍 진원지였던 노스페이스를 들여온 영원무역이 3년 만에 매출액이 2배 이상 수직 상승했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외국산 고가 패딩 한번 잘 들여오면 회사가 발딱 선다'는 말이 낭설이 아니었던 셈이다. 캐나다에 있는 캐나다구스 본사는 밀려드는 한국인들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 이어 한국어 홈페이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캐나다구스는 극지(極地) 탐험가들을 위해 만든 기능성 방한 점퍼라고 한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겨울 평균 최저기온이 가장 높았다는 한국에서 때아닌 방한 점퍼가 특수(特需)를 맞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경제력이 허락해 원하는 물건을 소비하는 건 개인의 자유다. 더구나 패션이란 원래 용도(utility)를 따지는 동네가 아니다. 하지만 비싼 외국 브랜드 점퍼를 앞다퉈 사 입는 현상에 '과시적 소비'나 '모방 심리'가 웅크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소비심리학을 연구하는 범상규 건국대 경영대 교수는 고가 점퍼 열풍에 대해 "나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앞선 집단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들을 추종하려는 '모방 심리'가 반영됐다"며 "상류층은 아니지만 되고 싶은 사람이 상품을 통해서라도 동류(同類) 의식을 느끼고자 하는 심정을 업체들이 고가 정책을 통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의류업체는 이미 유행이 보편화한 제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를 찾는, 이른바 '얼리 어댑터'가 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허영심을 파고든다. '차별화'를 한답시고 필요도 없는 고기능을 붙이고 가격을 올려서 이문을 더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 겨울 난데없이 한국을 덮친 고가 점퍼 열풍은 우리가 개성이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영과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소비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고가 제품을 사줘야 자녀의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믿고, 아동용일지라도 유행하는 비싼 점퍼를 사 입어야 자랑스러운 어른이 있는 한 자존감이 외양이 아닌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자녀들이 배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