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대한민국 검찰(수원지검·지검장 신경식)은 내란음모·선동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李石基) 의원에 대해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2013년 8월 28일 국정원과 검찰이 이 의원의 사무실과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된 ‘이석기 사태’는 좌파와 진보를 동일시하며 관대하게 대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준 계기였다.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의 내란음모 혐의는 지난해 9월 2일 정부가 국회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상당부분 공개됐다. 이 의원 구속 이후 총 45차례 공판이 열리면서 증인 100여 명의 증언과 녹음파일 청취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이석기 의원의 행적과 RO조직의 실체를 정밀 분석했다.
수사당국이 밝힌 이 사건의 정의(定義)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대남(對南)혁명론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의 조직원들이, 북한과의 전쟁상황이 임박하였다는 정세(情勢)인식하에, 전쟁상황이 오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을 결의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사건 수사는 ‘남철민(南鐵民)’이란 조직명을 사용하던 이모씨가 2010년 5월 RO조직의 실체와 활동 전반에 대해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이씨가 제보를 결정한 계기는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후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RO조직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사당국은 “이씨가 ‘자발적 신고’를 했으며, 그가 임의제출한 USB메모리에 저장된 증거물 등을 통해 적법절차에 따라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약 3년에 걸쳐 RO조직 활동을 추적하던 중, 2013년 5월 두 차례 ‘비밀회합’에서 내란음모 혐의가 포착됐고, 수사당국은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김정은 연설문으로 학습
2013년 봄, 남북(南北) 정세는 긴장 일변도(一邊倒)였다. 북한은 2월 12일 3차 핵(核)실험을 자행(恣行)했고, 3월엔 '정전협정 무효화'와 '전시상황 돌입' 선언까지 내놓았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고, 북한의 대남무력도발 위협은 더욱 거세졌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은 당시 한반도 정세를 ‘전쟁상황’으로 인식하고, 각종 지침을 하달했다. ‘RO 지휘부’가 2013년 3월 ‘세포모임’에 하달한 ‘전쟁대비 3대 지침’의 주요 내용은 ▲비상시국에 ‘연대조직’을 빨리 꾸릴 것 ▲대중을 동원해서 광우병 사태처럼 선전전을 실시할 것 ▲전쟁 발발 시 미군기지·주요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것 등으로 알려졌다.
지휘부는 이어 전쟁과 같은 이른바 ‘혁명적 상황’에 대비한 ‘세포단위별 결의대회’ 개최 지침을 하달했으며, 더 나아가 ‘김정은의 세포비서대회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실시하라고 세포모임에 지시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이석기의 ‘경호팀’으로 추정되는 조직원 20여 명은 강원도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산악훈련까지 실시했다.
수사당국은 “전쟁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당(黨)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강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김정은(金正恩) 연설문으로 사상학습을 했다는 것은 RO조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수사당국은 이석기 의원과 RO조직이 회합을 가질 때, 사전에 미리 ‘비밀회합에서 결의할 내용’과 ‘전쟁에 대비한 군사 행동’ 등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녹취록에서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이 “우리가 조사를 해놨습니다” “우리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리가 검토한 바에 의하면” “검토받은 바에 의하면” 등의 표현을 반복한 것은 토론 내용을 사전에 준비했다는 뜻이다. 이 고문이 토론 중 언급한 총기 개조, 인터넷의 폭탄제조법, 혜화전화국·평택 유조창 등 주요시설 현황, 무기고·화학공장 주소 등은 일반인이 사전에 정보를 수집·분석하기 전엔 알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엔 ▲국군 수도방위사령부의 상황 ▲국가비상대책 행정지침 ▲국가 사이버심리전 상황 ▲인터넷 사제폭탄 사이트 ▲철탑 파괴 사례 등 ‘일반적 정세 강연’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수사당국은 “이 의원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강연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수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의원이 강연 한 달 전후인 2013년 4월과 6월 국방부와 방통위 등에 한미(韓美)군사훈련, 주한미군, 한미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 무기 도입 사업 등 군사기밀 자료와 전력공급 중단 시 방송통신 및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대응 매뉴얼 관련 자료 등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