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 영화를 촬영 중인 임권택 감독님에게서 러브콜을 받았다. 사실 러브콜이라는 거창한 표현이 미안할 정도의 작은 카메오 출연이다.
그래도 그날 밤 흥행을 좌지우지할 대단한 역할에라도 캐스팅된 것처럼 잠도 설쳤다. 임 감독님의 카메라 앞에 서보겠다며 맹랑한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미끄러진 게 중학생 때 일이니 50년도 넘은 염원을 마침내 이루게 된 셈이다.
영화배우를 꿈꾸던 10대 어느 날, 내 또래의 소년병사가 나오는 시나리오를 우연히 손에 넣었다. 그러고는 그 배역을 요청하는 편지를 무작정 영화사에 보냈는데 기적처럼 "사진을 보내보라"는 답장이 왔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 형편이라 낡은 옷을 빨아 차려입고 돈까지 빌려서 사진관을 찾았다. 하지만 사진을 받아본 영화사의 답변은 달랑 한줄이었다. "본 배역과 맞지 않습니다." 영화배우로서의 내 커리어를 시작도 못 해보게 만든 이 문제의(?) 작품은 바로 임권택 감독의 1962년 데뷔작 '두만강아 잘있거라'다.
임 감독님의 데뷔 50주년을 맞던 재작년, 기념식 행사에서 역시 50주년을 맞은 '내 실패담'을 감독님께 전했다. 이번 출연 제의는 내 사연을 기억한 감독님이 건네주신 값진 선물인 것이다. 대망의 촬영 날, 방송국과는 다른 영화 촬영장 분위기에 기가 죽었다. 감독님과 주연 안성기씨를 포함한 스태프의 배려 덕에 안정을 되찾았다.
대사가 한 마디뿐인 첫 장면은 두 번 만에 통과했지만 액션까지 포함된 다음 신에서는 대사 따로 몸짓 따로 몇 번을 헤맸다. 생각보다 나이 든 모습으로 마주한 임 감독님의 카메라. 그 속에 담긴 나는 상상보다 훨씬 허술한 영화배우였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며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쉽지만은 않은 인생살이지만 그럼에도 삶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때론 이런 소소한 기적 같은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정작 완성된 영화를 볼 관객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남기지 못할 이 작은 배역이 내게는 그 어떤 명작의 주인공 역할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