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전생(前生)에 무사였던 것 같다. 6·25전쟁이 끝난 지 한참인데 틈만 나면 서울 약수동 금호터널 위 '해병대산'으로 까마득한 후배들을 찾아갔다. 해병 5기 아버지의 성세(聲勢)가 커질수록 가세(家勢)는 기울었다.
2남 2녀의 셋째인 김재욱(金在旭·57)은 학교 가는 게 두려웠다. 육성회비 독촉에 쫓긴 기억뿐이다. 운동이 유일한 청춘의 배출구였다. 합기도 초단증을 딸 무렵 도장이 복싱장으로 바뀌었다. '주먹 인생'이 막을 연 것이다.
세계 챔피언 유환길과 박찬희를 배출한 와룡체육관장은 1500원이던 월 회비를 면제해줬다. 기대대로 김재욱은 서울시 신인 대회에서 5전 5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국가대표 정택동에게 판정으로 졌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몇 차례 우승을 맛봤던 1978년, 불운이 찾아왔다. 서울시장배 2회전에서 들어오는 상대방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순간이었다. 상대가 쓰러지는 순간 '우두둑' 탁음이 들리는 듯했다. 손목이 부러진 것이다. 왼손만으로 우승했지만 이 미련하고 가난한 주먹은 오른손을 고칠 돈도, 남에게 병원비를 구걸할 배짱도 없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한국이 불참을 결정하며 그의 아마 생활도 종장(終章)을 맞았다. 39전35승4패였다.
프로 데뷔는 박찬희의 세계 타이틀 오픈게임이었다. 그 후 4연승을 달리자 뜻밖의 제의가 왔다. 1981년 주니어페더급 세계 랭킹 1위 무앙로이페트와의 원정전이 성사된 것이다. 누가 봐도 승수(勝數) 쌓기용 경기였다.
방콕에 김재욱은 혼자 갔다. 트레이너는 "질 게 뻔한데 왜 비행기값을 날리느냐"고 했다. 태극기 새긴 머리띠를 질끈 맨 이 외팔 복서는 태국 관중의 일방적 응원에 찬물을 끼얹었다. 레프트 어퍼로 세계 1위를 쓰러뜨린 것이다. 일방적인 경기가 끝난 뒤 당황한 심판들이 10분 동안 머뭇대더니 무승부를 선언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30년 전엔 그랬다. 이렇게 그의 프로 활동은 코미디처럼 끝났다. 두 번째 맞은 종장, 전적은 5승1무1패였다.
그 뒤 이 주먹의 삶은 영화처럼 펼쳐진다. 동대문 건달 두목이 차려준 포장마차는 소주병 깨며 깽판 놓던 양아치 몇 명을 두들겨 패면서 끝났다. 공사판에서 벽돌과 자갈과 시멘트를 나르는 '곰빵' 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자기가 이긴 적이 있는 오민근이 세계 챔피언이 되는 광경을 그는 골방에서 지켜봤다. "이리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재능은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포기한 미술 실력을 살려 양재 학원에 등록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에 빠져들 무렵 뜻하지 않은 일에 연루됐다. 나이트클럽 상무인 친구가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달려간 그의 주먹에 건달들이 쓰려졌는데 엉뚱하게 그가 경찰 유치장에 들어간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거기서 미용계의 대모(代母) 격인 여성을 만난 것이다. 유치장을 나오자 명동 국립극장 구두닦이 자리가 생겼다. 박동진·이어령·손숙 같은 유명인의 구두를 닦으며 그는 미용도 배웠다.
구두닦이 사업이 국립극장에서 국악원·예술의전당까지 번창할 무렵, 김재욱은 미용사로 데뷔했다. 전매특허는 미용 샴푸였다. 솥뚜껑 같은 손길로 주물러대자 여인들은 시원함의 극치를 맛보며 열락(悅樂)의 한숨을 토했다.
미용계 신지식인으로까지 선정되며 IMF 외환 위기 때도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계약서 한 장에 날아갔다. 법을 잘 모르면서 동업 계약한 게 화근이었다. 복서·포장마차·노가다·구두닦이·미용사…, 그야말로 주먹의 유전(流轉)이다.
지금 이탈리아 글로벌 화장품 업체 레비포스 홍보이사로 재기한 그는 복싱 황금기를 되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마침 올해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복서 홍수환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을 남긴 40주년이다.
"수환이 형이 한 말을 지금도 못 잊어요. 남아공 더반에서 아널드 테일러와 타이틀전 할 때 지쳐 포기하려 했대요. 트레이너가 이랬답니다. '야 인마! 쟤는 더 지쳤어.' 맞는 말이에요. 조금만 참으면 되거든요."
나는 소치올림픽 최고의 막장 드라마로, 연이어 치부가 드러나는 한국 빙상의 흑막(黑幕)을 보며 이 우직한 사내의 역정(歷程)이 계속 생각났다. '안현수의 올림픽'이 되고 만 이 사태의 진실과 거짓은 어디까지인가. 빅토르 안은 100% 무결점 피해자이고, 한국 빙상계는 절대 무변의 가해자인가? 그렇다면 6번이나 출전권을 독식한 선수는 왜 '장기 독재'란 말 대신 아름다운 투혼(鬪魂)의 상징이 됐는가? 대체 그 차이는 무엇인가.
결과(메달)에만 집착하는 대한민국, 팩트 대신 시류에 영합하는 언론들, 마음 내키는 대로 '영웅'과 '악당'을 만들어버리곤 이내 잊어버리는 국민이 빚어낸 협잡 속에 과연 스포츠의 순수(純粹)가 지켜질 수 있단 말인가. 물정 모르는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4년 뒤 세계적인 겨울 축제를 앞둔 대한민국에 망신살이 끼는 게 너무 안타깝다. 소치올림픽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모든 게 부덕(不德)한 대한민국의 소치(所致)입니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