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결성안이 반대 712표 대 찬성 626표로 부결됐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8시 30분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시에 있는 독일계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 공장. 이 공장 최고경영자인 프랭크 피셔가 12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투표 집계 결과를 발표하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미국 자동차노조 상급단체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이곳에 노조 지부를 만들려던 계획에 반대해온 현장 근로자들이었다. 'No UAW'라고 쓰인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한 근로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번 투표를 통해 현장 근로자들이 원하지 않는 노조를 누구도 강제로 만들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했다.

"미국자동차노조의 역사적 패배"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투표 결과를 "남부 지역에 밀집한 외국계 자동차업체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UAW의 계획이 좌절됐다"면서 "UAW의 역사적 패배"라고 평가했다. UAW는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디트로이트(미시간주)에 본사를 둔 미국계 '빅3'를 주요 기반으로 해왔다. 하지만 과도한 임금·복리후생 요구로 빅3를 파국으로 몰고갔다는 비판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발발 직후인 지난 2008년 말 파산 위기에 몰린 GM은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피아트로 주인이 바뀌었다. 빅3의 몰락과 함께 UAW도 위기를 맞았다. 한때 153만명(1979년)에 달했던 조합원 수가 39만명으로 급감한 것이다.

샘 페인(왼쪽) 선거관리위원이 14일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시의 폴크스바겐 자동차공장에서 노조 결성안 투표가 부결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가운데는 프랑크 피셔 폴크스바겐 미국 회장, 오른쪽은 노조 결성을 추진했던 게리 캐스틸 전미자동차노조(UAW) 지역 본부장.

새로운 활로 개척에 나선 UAW는 첫 타깃으로 폴크스바겐을 선택했다. 독일 기업들은 노사 동수로 구성된 감독이사회에서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등 노조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회사 측도 UAW가 근로자를 일대일로 접촉할 수 있도록 근로자 명부를 제공했다. UAW는 폴크스바겐에 교두보를 마련한 후 여세를 몰아 현재 노조가 없는 남부지역의 다른 외국계 공장으로 세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장 근로자들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WSJ는 "UAW가 회사 측의 협조를 받은 폴크스바겐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면 미국 어디에서도 이길 수 없다"고 전했다.

강성 노조에 대한 반감이 이변의 원동력

원래 이번 투표에서 UAW가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UAW가 투표권을 가진 근로자 1500여명 중 절반 이상으로부터 지지 서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빅3를 파산 위기로 내몬 UAW의 강성 투쟁 전력(前歷)이었다. 노조 반대 캠페인을 펼친 현장 근로자 마이크 버튼은 "UAW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조직운영자금으로 쓸 우리가 내는 조합비일 뿐이다. 우리 일터가 디트로이트 꼴이 나면 안 된다"며 동료들을 설득했다. 조립라인에서 품질검사 업무를 맡고 있는 도나 앨먼은 "원래 노조 지지 서명을 했지만, UAW가 GM과 크라이슬러 파산의 주범이라는 얘기를 듣고 입장을 바꿨다"면서 "UAW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사측과 싸움만 일으켜온 강성 노조"라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등 민주당 지지 세력인 UAW에 대한 반감도 컸다. 테네시주를 비롯한 남부벨트는 전통적으로 레드스테이트(공화당 강세 지역)다. 유지·관리 업무 담당인 트레비스 핀넬은 "내 돈이 진보 정치인을 지원하는 데 쓰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테네시주를 장악한 공화당도 노조 저지를 위한 전방위적 공세를 펼쳤다. 밥 코커 연방상원의원(공화·테네시)은 투표 전날 채터누가를 직접 방문해 "UAW가 우리 지역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매우 걱정스럽다"면서 "공장 근로자들이 UAW 가입의 영향이 어떤 것인지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 왓슨 주상원의원은 "만일 노조결성안이 통과될 경우 폴크스바겐에 제공해온 각종 감세 혜택과 인센티브를 취소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