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을 만들어 자막을 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단골 질문 하나. "영화 자막 글씨체는 어디서 구하나요?" 이들은 극장에 가면 늘 보는 외화 자막 글씨체를 자신이 만든 동영상에 담고 싶어한다. 영화에서 보던 익숙한 글씨체가 자막으로 들어가면 허술한 영상도 전문적인 영상처럼 보이는 포장의 힘을 노리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1월 말부터 영화 자막 글씨체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판매를 시작한 날부터 회사로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태시스템의 김태정(53) 대표는 "사람들이 '영화 자막 글씨체를 사용하고 싶다'고 해 일반인에게도 팔게 됐다"고 말했다. 2주 동안 50여명이 2만2000원짜리 글씨체를 다운로드 받았다. 손으로 쓴 듯한 영화 자막 글씨체의 이름은 '태-영화체'. 1990년대부터 극장에서 상영하는 외국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여년 동안 극장용 외화 자막의 70~80%는 '태-영화체'였다. 자막 제작 업체인 승보자막이란 회사가 처음 사용해 '승보체'라고도 불린다. 태-영화체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필경사'(筆耕士·글씨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가 영화자막을 손으로 직접 썼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건비도 많이 들었다. 승보 자막이 태시스템에 "컴퓨터로 찍어낼 수 있는 글씨체를 개발해달라"고 해 1994년 만들어졌다.

태시스템은 수석디자이너 김화복(61)씨의 손 글씨를 기초로 글씨체를 만들었다. 손 글씨를 썼을 때처럼 글자의 오른쪽 윗부분이 왼쪽보다 약간 더 올라가게 디자인했다. 글자의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는 똑같고, 획의 끝 부분은 더 두껍다. 동판으로 글자를 찍어내던 과거의 자막 입력 방식 때문이다. 자막을 새기는 도장처럼 생긴 동판은 사용하다 보면 끝 부분부터 닳았다. 그래서 쉽게 닳아 없어지는 획의 끝을 일부러 두껍게 만들었다.

아직도 태-영화체는 영화 자막 글씨체의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씨체 개발을 제안했던 이광현 전 승보자막 실장은 "버터 영화(외국영화)에 구수한 된장국 자막(우리 글씨체)을 입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