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밸런타인'으로 유명한 주류회사 '얼라이드 도멕'의 부사장이던 영국인 스티븐 스패로(44)는 회사가 인수합병되면서 35세 나이로 실직자가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무작정 히말라야로 떠났다. 3000m 넘는 고산에선 숨쉬기조차 벅찼고,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선 한 발짝 내딛기가 어려웠다. 한참 지쳐가던 그때, 스패로의 눈에 무언가가 비쳤다. "눈표범을 봤어요. 날카로운 눈빛과 유려한 몸매, 하얗게 빛나는 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국한 스패로는 바로 눈표범 보호재단(Snow Leopard Trust UK)을 만든다.

그가 지난 5일 한국에 왔다. 재단 재정을 충당하려고 만든 보드카인 'Snow Leopard(눈표범)'를 출시하기 위한 시장조사 목적이다. 지금까지는 본사가 있는 영국과 제조국 폴란드에서만 팔았는데 좀 더 널리 판매해보기로 했다. 눈표범이 소치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중 하나로, 북극곰을 제치고 최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계기가 됐다. 한국과 미국이 그가 택한 첫 수출 대상국이다. 보드카의 한국 주류시장 점유율은 극히 낮다. 하지만 그는 "한국은 한류(韓流)로 아시아의 유행을 선도하는 나라 아니냐"며 "한국에서 성공하면 아시아 전체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패로는 고3 시절 럭비 선수로 남아공에 갔다. 아프리카 야생동물들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는 동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의 소개로 사파리 가이드로 일하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대학 졸업과 취업으로 잠시 잊었지만, 눈표범과의 만남을 계기로 그는 다시 '동물의 세계'로 돌아왔다. "멸종위기 동물이더라고요.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재단을 만들었는데, 돈이 부족했어요. 자신 있는 게 술 장사라 보드카를 만들기로 한 거죠."

눈표범을 안고 있는 스티븐 스패로는 “소치올림픽을 계기로 눈표범 보호 운동이 좀 더 활발해질 것 같다”며 “10년 안으로 눈표범이 멸종위기종 명단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보호재단의 바람”이라고 했다.

야생동물에게 대개 그렇듯, 눈표범의 최대 적(敵)도 인간이다. "인도 북부, 몽골, 네팔, 알타이(러시아) 같은 12개국에 눈표범이 남았는데 도처에서 사살되곤 해요. 가축을 잡아먹기 때문이죠. 아름다운 가죽을 노린 밀렵도 없진 않고요." 보호재단은 그래서 주민들이 눈표범을 죽이지 않아도 생계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한다. "가축보험에 들어줘서 눈표범이 습격해 가축을 잃으면 즉각 보상해주는 거죠. 또 생계를 가축과 눈표범 가죽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낙타나 양털을 가공하는 기술도 가르쳐요." 교육 투자도 병행해 현지 어린이들에게 '자연과의 공존'에 대해 가르치고, 학자들의 눈표범 연구도 지원한다. 보드카 판매 수익의 15%가 눈표범 보호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후 거의 10년, 주민들의 수입은 평균 두 배 가까이로 늘었고, 총탄에 횡사하는 눈표범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현재 지구에 남은 눈표범은 4000~ 7000마리 정도라고 해요. 공교롭게 주로 인간의 분쟁 지역에 사는 바람에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어요. 아무튼 좀 더 많은 사람이 눈표범이란 멸종위기종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