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시복(諡福)된 복자 124위는 1984년 성인 103위 시성 때 빠졌던 초기 한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를 채워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1830년대 중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이후 순교자들을 위주로 103위 성인이 시성됐다면, 이번 시복은 선교사가 없던 시절인 1800년대 초반 자생적(自生的)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순교를 택한 이들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1791년 신해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 사이 순교자가 104명에 이른다. "순교 성인(聖人)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자손보다 뒤늦게 복자(福者)가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번 시복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중심으로 전 교구가 합심해 우리의 시각과 역량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 역사를 현양한 성과라는 것이다.
◇성인들의 선조들 복자로
천주교 초기 순교사를 보여주는 상징 인물은 윤지충. 그는 모친상 때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아 참수당해 이후 1만명에 이르는 한국 천주교 박해사의 시작점이 됐다. 백정 황일광은 당시 천주교가 신분 차별 철폐에 앞장섰음을 보여주는 순교자. 103위 성인의 실제 아버지, 할아버지들도 이번에 복자로 추대됐다. 단적인 예가 정약종-정하상 부자(父子). 정약종의 둘째 아들인 정하상은 북경교구에서 조선교구를 분리 설립하는 과정과 김대건 신부의 마카오 유학 등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다. 정하상은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추대됐다. 그의 아버지로 교리를 쉽게 해설한 '주교요지'를 저술하고 최초의 평신도 단체 회장을 맡는 등 한국 천주교의 초석을 닦는 데 크게 기여하다 1801년 순교한 정약종은 이번에 시복됐다.
◇교황 8월 방한 더욱 무게
124위에 대한 시복이 결정됨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8월 방한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현재 시복식에 관해 몇 가지 일정을 놓고 2월 중 마무리를 목표로 교황청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교황 방한을 위한 교황청 실무진의 현장방문도 조만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오는 22일 염수정 추기경의 서임 때 교황이 방한 일정 발표라는 '선물'을 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성인(聖人)과 복자(福者)
천주교에서 ‘성인’은 성덕(聖德)이 뛰어나 교회가 성성(聖性)을 공인한 이들을 가리킨다. 성인의 전(前) 단계인 ‘복자(福者)’는 뛰어난 덕행이나 순교로 신자들의 존경을 받는 이들에게 교회가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호칭이다. 복자는 ‘기적심사’를 거쳐 성인으로 시성될 수 있다. 성인은 공경의 범위가 전 세계 천주교이지만 복자는 공경의 범위가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 한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