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과학기술을 통한 성장 동력 창출을 논의할 때마다 항상 정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R&D가 그만큼 국민 세금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120조원에 가까운 정부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세계적 수준의 개발 실적이 미미한 것을 보면 예산 증액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신약(新藥) 개발 부문에 투자하는 액수는 정부와 민간 기업을 합쳐도 1조원 안팎이다. 그런데 대형 다국적 제약 기업인 로슈사의 2013년 연구·개발 예산은 10조원이 넘었다. 이런 엄청난 차이는 기초과학을 포함해 거의 모든 첨단 분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정부 예산을 늘려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투자 효율성을 올리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성장 동력 창출의 관점에서 볼 때 정부의 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기술과 민간 자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해 주는 것이다. 정부 지원으로 나온 연구 성과에 기업이 투자할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수준의 후속 연구가 필요한데 이런 과정까지 모두 정부가 지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연구 성과를 검증하는 후속 R&D 과정에는 에인절 또는 벤처캐피털 등의 민간 자금이 원활하게 유입되어야 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회수인데, 기술이전과 인수·합병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 증권시장 상장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

먼저 벤처캐피털의 운용 기간이 짧다 보니 실제 투자 기간은 3~4년 정도이다. 따라서 이들은 중장기성 R&D 기업보다는 단기에 상장 가능한 회사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큰돈을 미래 성장 동력 분야에 투자하지만 그로부터 나온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1차 자금은 구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장기 투자가 가능한 자금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 예로 대규모 연기금이 국가 전략 사업에 아주 작은 비중이라도 투자할 수 있다면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2013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에서 운용하는 돈만 420조원이 넘는다. 이 중 0.5%만이라도 중장기 성장 동력형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창업과 상장 활성화는 물론 벤처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R&D 기업의 상장을 지금보다 활성화하는 것이다. 코스닥은 기술 성장 기업에 대한 특례 조항을 두어 R&D 중심 회사가 상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제도 시행 이래 9년간 이를 통해 상장된 기업이 13개뿐일 정도로 보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장 후에 지켜야 할 재무 조건을 충족하는 것도 기술 중심 회사에는 만만치 않다. 그렇다 보니 많은 벤처 회사는 미성숙 기술을 싸게 판다든지, 다소 엉뚱한 사업을 벌여 역량이 분산된다. 이 부분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연구로만 원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발상도 바꿔야 한다. 한국은 어디서 개발됐든 원천 기술이 일단 손안에 들어오면 선진국들보다 더 빨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IT 등 여러 분야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미국이나 일본 정부는 우리보다 훨씬 큰 규모로 기초 연구를 지원하여 좋은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결과의 가치를 초기에 빨리 파악하여 사들이고 추가 연구를 통해 가치를 크게 올릴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정부 지원으로 나온 성과의 대부분이 자국은 물론 외국 기업에도 똑같이 개방되어 있고, 선진국이라고 해서 숨은 보석을 모두 찾아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천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선진국의 연구 결과가 초기 상태라면 해당 연구 기관으로부터 사 오면 된다. 이때 정부의 지원과 후속 연구가 연계된다면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미 창업한 경우라면 코스닥이 시행하고 있는 기술 성장 기업 특례 규정을 외국 회사에도 적용해서 상장시켜 줄 수도 있다. 이때 상장 시 의무 조항으로 국내 지분의 최소 기준 설정이나 국내 기업과의 우선협상권을 둘 수도 있다. 이 전략의 성패는 우리가 초기 성과의 사업 잠재력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여 싸게 사들이느냐에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 지원 R&D는 과학기술 성과 자체를 얻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서는 연구 성과와 민간 자본의 연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