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한 사람의 진술만 믿고 공소를 제기한 것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6일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40여분간 판결문을 읽던 중반에 이범균 재판장(형사합의 21부)이 검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하자 검사석에 앉아 있던 검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대편 변호인들은 무죄를 직감한 듯 살짝 미소를 보이다가 표정 관리를 했다. 이날 법원은 국정원 여직원 사건 수사를 방해하려 한 혐의(선거법·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 남용)로 기소된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해 세 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입증할 유일한 간접증거인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배치돼 믿을 수 없다"며 "공소사실 자체가 객관적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7명 중 권은희만 다른 진술"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검찰은 권은희 과장 진술을 토대로 김용판 전 청장이 ▲국정원 여직원 노트북 압수 수색 영장 신청을 막았고 ▲키워드 등 분석 범위를 제한하도록 했고 ▲허위 수사 결과를 대선 직전 발표토록 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경찰관 17명이 증언했는데, 권은희 과장을 제외한 다수 증인은 서로의 진술과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재판부는 2012년 12월 12일 수서서(署) 경찰들이 압수 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하러 가다가 보류하고 돌아온 것은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이 "떠넘기기식 신청은 하지 말라"고 지시함에 따라 오전에 일어난 일로 "오후에 김용판 청장이 전화해 보류를 종용했다"는 권은희 과장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경찰관들과 김기용 청장, 수서서장 등의 진술이 일관된다는 것이다. 또 분석 범위를 제한했다는 혐의는 "분석관들이 현실적인 분석 시간을 고려해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비방·지지 글을 찾는 데 주력하려고 키워드를 박근혜·문재인·새누리당·민주통합당 4개로 결정한 것일 뿐"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수사 결과를 미리 정해 놓고 대선 직전 발표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당시 여직원이 40여개 아이디와 닉네임을 쓴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점에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당시 분석 결과 정치 관련 지지·비방 글이 나타나지 않았고 보도 자료 초안에 분석 결과를 공란으로 비워둔 점을 보면 미리 결과를 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밖에도 1차 분석 결과물에 아이디와 닉네임이 들어 있는데도 권 과장이 "결과물에 아이디와 닉네임이 없어 분노해 다음 날에야 받아 왔다"고 진술하거나 통화 기록이 없는데도 "국정원 직원이 분석 과정에 개입하는 문제로 서울청 수사2계장과 통화를 했다"는 등 객관적 증거와 배치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CCTV 짜깁기' 재판부도 인정
검찰이 지난해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석팀 CCTV 영상을 왜곡·짜깁기해 공개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재판부 역시 CCTV 영상이 증거가 되지 않는다면서 "검사의 주장은 앞뒤 상황을 도외시한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분석관들이 국정원 여직원의 여론 공작 활동 정황을 파악하고도 수서서에 알리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당시 분석관들은 선거 개입 여부를 단정하지 않고 있으며, 분석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의미를 추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혐의를 입증할 뜻밖의 증거가 나오자 한 분석관이 녹음되는 것을 막으려 볼륨을 줄였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제를 사적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녹음·공개될 경우 발생할 파장을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거짓이 섞인 권은희 과장의 진술과 추측에 근거한 증거 짜깁기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