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전 11시 40분쯤 서울대 공대의 한 강의실. 코밑수염이 거뭇거뭇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8명이 책상에 앉아 2학년 1학기에 배울 '지수법칙'을 공부하고 있었다. 경기도 연천·양평군 등지에서 온 이 중학생들은 3주간 대학 기숙사에서 합숙하면서 공부하는 '삼성 드림클래스' 겨울 캠프 참가자들이었다. 한참 문제를 풀던 황강빈(14·연천 청산중)군이 손을 번쩍 들어 "선생님, 문제가 잘 안 풀려요" 하자 대학생 수학 강사 우승원(20·충남대 컴퓨터공학과 2)씨가 "이건 분모, 분자를 X²으로 묶은 뒤 나누면 돼" 하고 설명했다. 이 캠프에 강사로 참여한 조동섭(21·연세대 경영학과 2)씨는 "스스로 성공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사회봉사단은 지난 2012년 3월부터 매년 300여억원을 들여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읍·면·도서 지역 중학생에게 방과 후, 주말, 방학 교육을 제공하는 '드림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은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인 중학교 때 기초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드림클래스에 참여한 중학생은 1만7000여명이다. 삼성은 본지가 소득 격차로 교육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현상을 심층 취재해 2010년 보도한 '사다리가 사라진다' 기획 시리즈를 보고 이 사업을 착안했다. 삼성 미래전략실 김부경 전무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자는 취지로 '교육 사다리'를 놓는 일에 뛰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1월부터도 중학생 1만4000명을 대상으로 드림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2년 진행했지만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삼성 드림클래스의 주중·주말 교실에 참가한 중학교 3학년 2329명 가운데 영재고 1명, 과학고 7명을 포함해 135명이 올해 우수 고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지난해엔 2012년 참가자 1295명 중 40명이 특목고·자사고 등에 진학했다.
아픈 가정사를 극복하고 올해 부산 국제외국어고에 입학하는 정고운(16)양도 '교육 사다리'를 타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학생이다. 정양이 9세 때 부모님은 이혼했다. 어머니가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던 중1 때는 노래방,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밤 11시까지 놀곤 했다. 반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월 120만원 내외의 어머니 수입과 아버지가 매달 보내는 양육비 60만원으로는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정양이 지난해 9월부터 드림클래스에 참가하면서 반 1등, 전교 15등까지 성적이 올랐다. 성적이 오르면서 꿈도 생겼다. 정양은 "중2 때까지만 해도 목표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경제학과를 졸업해 유엔에서 후진국 어린이들을 돕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라고 했다.
대전 사는 이성구(16)군은 두 살 때 아버지를 간암으로 잃었다. 어머니는 어린 이군 남매를 친척집에 맡긴 뒤 재가(再嫁)했다. 남겨진 이군 남매는 개척 교회 목사인 이모부 가족과 함께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 하는 43㎡(약 13평)짜리 집에 살았다. 생물 과목을 좋아하는 이군은 과학고에 가고 싶었지만 어려운 형편에 과외는 꿈도 못 꿨다. 반에서 1~3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곧잘 했지만 과학고에 진학하기엔 영어와 수학의 기초가 부족했다. 그런데 삼성 드림클래스에서 과학고 출신 카이스트 재학생에게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난 뒤부터 성적이 더 올랐고, 바라던 대전 동신과학고에 입학했다.
서준희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은 "해외 사례 등도 참고해 '드림클래스' 운영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쌓았다"면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이 교육 사다리 사업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