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멕시코를 출발해 13개월 동안 태평양에서 표류하다 구출된 것으로 알려진 엘살바도르 출신 어부 호세 알바렌가.

작년 1월 개봉했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에서 주인공인 소년 파이(Pi)는 227일 동안 홀로 태평양에서 표류한다. 이 영화같은 현실이 실제로 벌어졌다. 미국 CNN 등 외신들은 13개월 동안 태평양 망망대해에서 표류한 남성이 지난달 29일 미국령 마셜군도에서 구조됐다고 4일 보도했다. 400일이 넘는 표류 기간은 영화를 초월한다.

주인공은 멕시코에서 어부로 일하던 엘살바도르 출신 호세 알바렌가(37). 알바렌가는 "2012년 12월 21일 상어를 잡기 위해 멕시코 서부 해안 코스타아술 마을에서 출항했다가 거센 바람으로 항로를 벗어나 표류했다"고 구조 직후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멕시코에서 마셜군도까지 약 1만780km를 이동한 셈이다.

알바렌가의 길이 7m짜리 배는 강한 바람에 항로를 이탈하는 과정에서 모터가 고장났다. 이후 알바렌가는 13개월을 거북과 새, 물고기를 잡아먹고 거북의 피와 빗물, 소변으로 수분을 섭취하며 버텼다고 했다. 알바렌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말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가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했던 것처럼, 알바렌가도 항로를 잃고 처음 표류하기 시작했을 때 혼자가 아니었다. 에제키엘(15)이라는 소년이 상어잡이에 함께 나섰다. 그러나 영화에서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함께 무사히 육지에 도달한 것과 달리, 알바렌가는 홀로 구조됐다. 알바렌가는 "에제키엘은 날고기 먹기를 거부하다가 4주 정도 만에 죽었다"고 말했다.

알바렌가의 표류는 405일만에 끝났다. 지난달 29일 마셜군도 최남단 에본(Ebon) 산호초섬에 떠밀려온 알바렌가의 배에서 현지 주민들이 그를 발견해 구조한 것이다. 구조 당시 배는 반파 상태였고, 알바렌가는 덥수룩한 머리에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따개비로 뒤덮인 반파 상태의 배에서 바다거북의 사체와 뒤엉킨 알바렌가를 발견했다.

AP뉴시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알바렌가의 표류기가 알려지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점점 늘었다. 무엇보다 알바렌가가 13개월을 표류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뚱뚱했기 때문이다. 마셜군도 외교부 관계자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조난자들이 여윈 상태에서 구조되는 데 반해 알바렌가는 그렇지 않았다”며 “그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의심 때문에 현지 경찰은 구조 직후 알바렌가의 배를 샅샅이 조사하기도 했다. 환각 증세를 보이는 약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알바렌가의 배에서 특별한 약물 성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알바렌가가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점도 의심의 이유가 됐다. 피부가 장기간 햇빛에 노출된 것치고는 무척 건강한 상태였다. 또 새 부리에 쪼인 흉터가 곳곳에 있었지만 관절 통증 말고는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다.

알바렌가의 생존 방법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알바렌가는 ‘맨손으로 거북과 고기를 잡아 먹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느냐 불가능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하지만 알바렌가의 표류기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진실 논란은 점차 잦아들고 있다. 멕시코에서 알바렌가의 출항과 관련한 기록이 확인됐다. 멕시코 정부는 2012년 11월 실종된 어부와 소년 한 명을 헬기와 선박을 동원해 수색했으나 실패한 기록을 확인했다고 5일 발표했다.

알바렌가는 12월에 출항했다고 진술했지만 전문가들은 ‘바다 위를 장시간 떠다니면 기억의 상당 부분을 잃고, 시간 관념도 잃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알바렌가도 자신이 출항한 날짜를 확신하지는 못했다.

지인들의 진술도 알바렌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알바렌가와 함께 일한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동료 어부들은 “알바렌가가 원래 ‘뚱뚱이’로 불릴 만큼 뚱뚱한 체질이었다”고 말했다.

또 알바렌가처럼 장기간 표류하다 구조된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알바렌가의 말에 신빙성을 더한다. 지난 2006년 멕시코 어부 3명이 8m 길이의 소형보트를 타고 9개월 동안 표류한 끝에 구조된 경우도 있었다.

알바렌가는 마셜제도의 수도 마주르의 병원에서 탈수와 영양실조 증세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다. 현지 경찰은 현재 알바렌가가 굶주려 숨졌다고 진술한 에제키엘(15)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알바렌가는 하와이를 거쳐 고국 엘살바도르의 가족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현지 언론은 고향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알바렌가의 어머니 마리아 훌리아 알바렌가가 “신이 주신 기적”이라며 “지겹도록 먹었을 생선은 빼고 아들을 위한 영양가 있는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