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불안하고 갑갑하다. 세계경제를 보면 불안하고,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갑갑하다. 다시금 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말 미국의 2차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 발표 이후 세계경제가 심하게 출렁이고 있다. 인도·터키 등 '취약 5개국(Fragile 5)'을 중심으로 거론되던 신흥국 위기 징후가 헝가리·폴란드 등 비교적 건실하다던 동유럽 국가들로까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미국의 일방적 통화정책 기조를 격하게 비판했지만, 지금 미국은 남의 사정 봐줄 형편이 아니니 신흥국 경제의 앞날은 살얼음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과연 이 풍파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가 한국에 미칠 충격은 제한적일 거라는 전망이 아직까지는 우세한 편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튼실해졌으니 여타 신흥국과는 위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작년에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세계 7위의 외환 보유액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 주된 논거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또 한 번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오류로 판명되지 않을까 하는 꺼림칙함이 남는다. 2008년 이후 전 세계가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연명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 순탄할 리 없고 한국만이 예외일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주관적 예측은 역술가의 점괘와 크게 다를 바 없을 테니 좀 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마침 올 1월에 이와 관련된 세계은행의 정책 보고서가 나왔다. 작년 5월 미국이 양적 완화 축소를 '언급'만 했을 때도 신흥국 시장이 크게 흔들린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총 53개 신흥국을 대상으로 그 파장의 강도와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결론이 경제학의 일반적 상식과 상당히 배치된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요약하면 첫째로 재정 적자, 정부 부채, 외환 보유액, 경제성장률 등 이른바 거시적 펀더멘털이 양호한 나라라고 해서 외부 충격을 더 잘 견디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는 나 혼자 잘한다고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금융시장을 갖춘 신흥국일수록 자본 유출 압력도 컸다.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필요한 국제 투자자들의 현금 인출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셋째, 환율 조정이나 자본 통제 등 외부 충격에 대한 직접적 대응 조치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보다는 국내의 버블 또는 부실을 걷어내는 안정화 조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상의 세 가지 결론에 비추어 볼 때 2014년 한국 경제는 1997년 또는 2008년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한국이 돈 빼가기 딱 알맞은 신흥시장이라는 점은 이미 입증된 바 있고, 가계 부채 및 부실기업 문제 등 위험 요인이 산적해 있다는 것도 상식인데, 거시적 펀더멘털이 양호하다는 것만으로 '한국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강조하건대 위기를 예언하는 사람은 양치기 소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면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위기관리란 원래 그런 거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보다도, 중국의 경기 둔화보다도 한국 경제에 더 심각한 불안 요인이 있다. 그것은 양치기 소년을 자임하면서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꺼내 든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으로 인해 경제정책의 유연성이 마비된 데다가 가뜩이나 불신받던 경제팀이 개인신용 정보 대량 유출 사건으로 뇌사 상태에 빠졌으니 금융시장 점검 회의를 골백번 해본들 시장에 그 어떤 시그널도 보낼 수 없다. 문제도 익히 알고 있고 답도 대충은 아는데, 그 누구도 정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상황이야말로 위기의 징후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위기의 씨앗은 우리 내부에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로 인한 충격은 올해 내내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내년쯤에는 미국의 장기 금리가 본격 상승할 것이고, 그 후년부터는 단기 기준 금리도 인상될 것이다. 그때 세계경제에, 특히 신흥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상화된 위기 상황 속에 한국 경제의 활로는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를 바로 세우는 것뿐이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