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 산천어는 듣도 보도 못했어요. 화천에는 산천어가 서식하지도 않았고. 저는 '산천어'를 본능적으로 화천에 있는 산(山)과 물(川), 고기(魚)로 해석했어요. '이건 된다'라고 했죠."
CNN 방송 등에서 '겨울의 불가사의(Wonders of Winter)'로 소개된 '산천어축제'의 지휘자는 정갑철(69) 화천군수다. 공고(工高) 중퇴에 지방직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한 그가 산골 병영촌(兵營村)을 '세계축제도시'로 바꿔놓았다.
"무식한 놈이 아니면 이럴 수 없죠. 낚시꾼들이 '산천어는 플라이낚시로 잡는 거지, 얼음에 구멍을 파겠다니' 하며 비웃었어요. 하지만 산천어를 풀어놓고 제가 얼음 구멍으로 낚시를 해봤어요. 그때 낚시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단번에 잡았어요. '낚시꾼 말을 더 들을 것 없다'며 시작했어요."
―화천에 없는 산천어로 화천의 축제를 만들었으니, 거의 '발명'을 한 셈이군요.
"처음에는 강원도 인제의 '빙어축제'를 본떴어요. 빙어가 손가락만 한데 '대어상(大魚賞)' '다어상(多魚賞)' 등을 만들어 이틀간 하니 '이걸로 먹고살겠나' 싶었어요. 제가 군수가 된 뒤 민간 컨설턴트에게 '먹고살 거리를 갖고 오라'고 했더니, 아이템 10개 중에 '산천어'가 있었어요."
축제가 끝나기 하루 전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갔다. 어디서 이런 인파가 몰려들었을까. 외국인도 적지 않았다. 축제 기간 전국 양식장에서 기른 산천어 50여만마리가 이곳으로 수송된다.
"첫해에는 사람이 안 올 것 같아 축제장에 식당도 안 들어오려고 했어요. 업자에게 '소머리를 일곱 개 사줄 테니 국밥집을 해라. 장사가 안 되면 소머리 값을 안 받겠다'고 했지요. 그때 우리 군민이 2만2000명이니 외지인 2만명만 와도 읍내 한복판에서 내가 옷 벗고 춤추겠다고 했어요."
―읍내 한복판에서 춤을 췄습니까?
"춤추겠다는 약속은 못 지켰어요. 그해 22만명이 왔어요. '6ㆍ25가 끝난 뒤로 이 동네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모였다'고들 했지요. 처음에는 잠잠하다가 일주일이 지나자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입소문이 대단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 뒤 100만 인파가 몰려온 계기는 CNN 방송 때문이었지요. 외신에서 나면 역(逆)으로 국내 언론에 또 대서특필돼요."
―화천군 소득이 강원도 내 18개 시군 중에서 상위 셋째가 됐다고 하더군요.
"통계 수치일 뿐 내게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아요. 산천어축제가 대성공이라고들 하지만 축제 때만 인파가 넘쳐나요. 계절에 상관없이 외지인들이 오도록 해야 성공이지요."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해 군수 3선(選)을 할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억지로 꿰맞추면 근면과 신뢰였어요. 신참 공무원 때 군청 경리계에 발령을 받았는데, 남들이 다 퇴근한 뒤에도 남아서 일을 했어요. 책상 위에 모포를 깔고 잤어요. 한번은 술 마시고 귀가하던 군수님이 자정이 넘어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어 들여다보니 한 놈이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군수님이 사모님을 시켜 라면을 끓여 들고온 적이 있었어요."
―청탁을 받거나 이권의 유혹이 많았지요?
"강원도청 탄광 계장을 할 때 채굴 허가를 안 내줘서 소송을 당했어요. 청와대까지 끌려가 욕을 먹었어요. 하지만 대법원에서 제가 이겼어요. 묘지담당 사무관 시절에는 대형교회 목사가 고위직에 로비를 한 공원묘지 조성을 허가해주지 않아 시달렸지요. '트러블 메이커'였던 셈이지요. 그런데도 '저놈은 믿을 수 있다'고 본 건지, 남들보다 빨리 승진했어요."
―원래 강직해서 그렇게 했나요?
"서울서 공고를 중퇴한 저는 학연과 인맥이 없었어요. 기댈 데가 없으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절대 무리를 하면 안 되는 거죠. 원칙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지요."
―군수는 선거 때 신세 진 사람이 많아 자유롭지 못할 것 같은데요?
"나는 물러나면 연금 320만원을 받는다, 떳떳하게 할 수 있다는 배짱이 있었지요. 막상 선거직에는 돈이 필요해요. 현행법으로는 안 되지만, 욕을 안 먹으려면 선거에서 도와준 주민 경조사에는 부조도 해야 해요. 돈 받는 단체장에게 '나는 부끄럽지 않다'며 돌 던질 수 있는 단체장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당초 무슨 마음으로 군수에 출마했나요?
"공무원이 되면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 국민에게는 정직과 봉사…'라고 서약해요. 이렇게 거창한 말은 실행 가능성이 없지요.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책에 '왓 아임 파이팅 포(What I am fighting for)?'라는 제목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 얘기가 있었는데, '나는 한국전쟁에 참전하러 간다. 집 정원의 떡갈나무를 위해서, 내 사촌 여동생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위해서'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저도 57세에 임명직 공무원을 마무리하면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이제 무엇을 할까 생각했지요."
―숱한 명사를 만났지만 이런 답변은 듣기 어렵더군요.
"대놓고 '가족을 위해 군수가 되겠으니 찍어달라'고 하면 미친놈이 되죠. 물론 화천군이 무엇으로 먹고살까를 고민했지요. 6ㆍ25 이후 폐허처럼 방치됐고 군부대에 의존해 겨우 먹고살았으니까요."
―단체장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나요?
"지방 경쟁력을 키워 주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지요. 화천은 산 86%, 물 5%입니다.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땅은 9%인데, 그나마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죠. 공장도 하나 없어요. 아무것도 없으니 관광으로 먹고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화천에 그럴 만한 유적이나 문화재가 있나요?
"관광자원이 없으니 산과 물, 청정한 공기를 내세웠죠. 또 '평화의 댐'이 있어 평화를 주제로 먹고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내전과 갈등이 있는 세계 각국의 탄피를 구해 '평화의 종'을 만든 거죠. 종을 한 번 치는 데 500원씩 받아요. 이걸 모으고, 군 내 부사관들이 봉급에서 얼마씩 갹출한 돈으로 에티오피아 참전 군인 후손 132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줘요. 6ㆍ25 때 에티오피아 군인이 처음 전사한 곳이 화천이니 스토리가 되는 거죠."
―'평화의 종'을 만든 게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지요?
"그렇죠. 각국의 탄피를 구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어떤 장관을 찾아갔어요. '평화의 댐'으로 얘기를 꺼내자, 장관이 대뜸 '그 전두환이 사기 친 댐 말하나요?' 했어요. 순간 '이런 생각을 하는 부류의 도움은 안 받겠다'며 일어났어요. 화천군에서 독자적으로 30개국의 탄피를 구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부류라면?
"전두환이 사기 친 댐이라는데, 2차 공사를 해서 평화의 댐을 80m에서 125m까지 높이기로 한 것은 김대중 정권 말이었어요. 북한에서 금강산댐 공사를 재개해 실제 초당 206t씩 흙탕물이 20일 가까이 쏟아져 내려오자 '이게 아니구나' 했던 거죠. 노무현 정권 때 평화의 댐 2차 완공식이 있었지만 해당 장관조차 안 왔어요. 자신들이 부정하던 평화의 댐을 제 손으로 더 높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죠. 저는 대놓고 '과연 어떤 놈이 정말 사기꾼인가?' 말하죠."
―'평화의 댐'을 방문한 대통령이 있었습니까?
"현직 대통령은 없어요. 평화의 댐을 시작해놓고 물러났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몇 년 전 부하들과 함께 방문한 적 있어요. 감회가 있는 듯 권하는 술잔마다 마시더니 '내가 그래도 틀리지는 않았지?' 하고 말하더군요."
―화천과 뗄 수 없는 인물에는 작가 이외수씨도 있지요?
"어떤 행사를 할 때 주위에서 '대중적인 인기와 추종자가 많다'며 이외수씨를 심사위원으로 추천했어요. 저는 그때까지 이외수 작품을 본 적 없고 지저분하다는 이미지만 갖고 있었어요. 막상 만나보니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든 '감성마을'은 성공한 작품이었어요."
―이외수씨가 '트윗 대통령'이 되고 특정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면서 시끄러워졌죠.
"여기에 올 때만 해도 트윗이라는 게 없었는데….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우파든 좌파든 대통령 후보치고 안 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박근혜ㆍ정동영ㆍ문재인ㆍ안철수씨가 모두 나름대로 목적을 갖고 찾아왔어요."
―'감성마을'이 90억원짜리 '아방궁'으로 소문나면서, 거처를 제공한 군수께서도 함께 공격을 받았죠?
"저를 향해 '새누리당 3선 군수가 좌빨을 돕느냐.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죠. 작년 2월쯤 이런 '좌빨 소동'이 대략 끝났다 싶었는데, 얼마 안 돼 '혼외자' 문제가 또 터졌어요."
―이외수씨가 언행과 처신에 절제가 있었다면 저렇게 추락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내심 그를 만류하고 싶지만, 그의 사생활이니까…. 다만 추종자들이 이 사람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팔로어들의 성향대로 그가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자기가 만들어놓은 덫에 빠진 격이지요. 요즘에는 '정치에는 다시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요."
―군수가 바뀌면 이외수씨의 감성마을은 어떻게 되죠?
"이외수씨는 여기에 와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어요. 그는 이곳을 필요로 하고, 화천군 입장에서도 이미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어요. 이외수가 아니면 그곳을 활용할 수가 없어요."
오는 6월 그는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의 열정과 헌신, 능력을 아는 이 중에는 그가 강원도 지사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다.
"저는 시골 노인네로 돌아갑니다. 블루베리를 5백주 심어놓았어요. 정말 농사를 짓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블루베리 밭에서 풀을 뽑으려는 거죠."
―미련이 남을 텐데요.
"선거직을 하면 주위에 말이 많아요.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아내는 '이제 편안하게 개인적 삶을 살자'고 했지요. 2010년 제가 3선 취임을 하고서 딱 1년 뒤 아내를 잃었어요. 그렇게 보내니 한(恨)이 남아요. 블루베리 밭에서 쭈그리고 풀을 뽑다 보면 몰입이 돼 아내도 세상사도 다 잊을 수 있겠지요."
산천어축제장을 함께 걷는데, 그는 떨어진 쓰레기가 보이면 몸을 구부려 줍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