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까지 부슬부슬 비 오더니 낮에도 안개가 짙었다. 안개가 아니라 는개가 내리고 있었다.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다. '늘어진 안개'가 줄어든 우리말이다. 이슬처럼 내린다 해서 이슬비고, 이슬비보다 굵은 건 가랑비라고 한다. '가랑'은 안개를 뜻하는 옛말이다. 가랑비가 바람 없이 숨죽여 내리면 보슬비다. 설날 빼고 연휴 사흘 겨울비가 추적추적 흩뿌렸다. 고향 오가고 나들이하는 2800만 바쁜 걸음을 붙들었다.
▶올 설에도 귀경길은 설 당일에 가장 붐볐다. 아침 열 시쯤부터 고속도로 곳곳이 막혔다.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십몇 년 전만 해도 명절 오전에는 다닐 만했다. 남쪽 바닷가 고향집을 설날 아침 아홉 시쯤 나서면 450㎞ 길이 그런대로 잘 뚫렸다. 대개 연휴 전날 내려와 이틀 밤을 고향에서 보낸 뒤여서 일찍 떠나오는 게 그나마 덜 죄송했다.
▶해가 갈수록 당일 귀경길 막히기 시작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교통 체증을 피하려고 일찍 시골집을 떠나는 이가 많아지면서다. 차례 지내고 아침 들기 무섭게 대문을 나서는 사람들이다. 자식이 불효여서라기보다는 부모가 자식 고생 덜 시키려고 빨리 가라고 재촉하기 때문이다. 늙은 부모님도 조바심하며 자식 깨우는 시각이 갈수록 빨라졌다. 꼭두새벽에 깨워 등 떠밀듯 쫓아 보내셨다. 대낮에 서울 집 들어와 전화 드리면 "잘했다, 고생했다"고 반기시곤 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설 귀성객들에게 물었더니 열에 셋, 34%가 "고향에서 하룻밤만 묵고 온다"고 했다. 연휴가 하루 늘어 나흘인데도 10년 새 12%포인트 늘어났다. "당일치기 귀성"도 12.4%였다. "이틀 밤 이상 머문다"는 답은 10년 전 68%에서 54%로 떨어졌다. 거의 절반은 고향 집 들어서면서 돌아올 생각부터 하는 셈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부모는 자식 손주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게 마련이다.
▶고속도로가 조금씩 꾸준히 지름길로 뚫리면서 고향 가는 450㎞ 길이 345㎞까지 짧아졌다. 걸리는 시간도 한 시간 훨씬 넘게 줄었다. 정작 고향 길이 수월해지자 부모님이 떠나셨다. 귀성할 일이 없어졌다. 부모 뵈러 가느라, 뵙고 오느라 차 밀리는 빗길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명절과 고향과 부모는 일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힘이다. 겨울 맞나 싶게 질기게 오던 비도 그쳤다. 오늘부터 정신 번쩍 들도록 추워진다고 한다. 옷깃 세우고 종종걸음쳐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