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예정대로 2차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축소)에 나서자 신흥국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테이퍼링의 여파로 최근 2주 이상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지만, 연준이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가겠다고 선을 긋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는 22~23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연준의 테이퍼링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신흥국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면서 신흥국 금융·통화당국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마저 신흥국을 향해 ‘긴급 자구 조치’를 요구하는 등 선진국과 신흥국이 금융시장 불안 원인과 대책 마련과 관련해 극명한 시각 차이를 보이면서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라잔 총재 “국제 금융 협력 붕괴”…피셔 총재 “연준은 미국의 중앙은행”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 급락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의 원인을 두고 신흥국과 미국 사이에선 책임 공방이 거세다.
포문은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열었다. 라잔 총재는 지난 달 30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을 향해 “국제 금융 협력이 붕괴됐다”고 일침을 놨다.
라잔 총재는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통화 정책이 신흥국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지적하면서 “국제 공조에 나서야 할 선진국이 ‘신흥국 위기를 각국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발을 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신흥국이 과거 금융위기 극복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미국 등 선진국도 최근 금융 불안의 일정 부분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준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다음날인 31일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연설회에서 “일각에서 연준은 세계은행이며, 그에 부합하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연준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라며 “다른 국가들도 저마다 중앙은행이 있고, 그에 걸맞은 역할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IMF도 ‘신흥국 불안의 해법은 신흥국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연준을 거들었다. IMF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인도, 터키, 브라질 등의 신흥국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 개선을 위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의 금융 불안의 원인을 두고서는 “한가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했지만, 테이퍼링의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 신흥국 자금 이탈 2011년 이후 최고…주요 17개국 주가 하락
올 들어 신흥국의 자금 이탈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인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RF)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신흥국 증시에서만 모두 122억달러(약 13조원)가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마지막 주의 이탈 규모는 주간 기준으로 2011년 8월 이후 가장 컸다.
또 미 연준이 양적완화의 첫발을 뗀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세계증시 시가 총액은 1조9150억달러(약 2053조원)가 증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21개 신흥국 주가지수를 종합한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 지수는 4.1% 하락했고, BRICs 국가의 MSCI지수는 5% 가까이 떨어졌다.
미 연준이 예상대로 두 번째 테이퍼링을 단행한 지난주에도 세계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주요 20개국 주가지수의 지난주 주간(1월27~31일) 등락률을 살펴보면 17개국의 주가지수가 하락했으며, 이 중 7개국 주가지수는 2% 넘게 떨어졌다.
국가별로는 러시아의 RTS 지수가 4.62% 떨어지며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터키 BIST100지수(-3.99%), 닛케이평균(-3.1%), 태국종합지수(-3.07%), 인도 SENSEX30지수(-2.935) 순으로 하락폭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