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이 21일 제주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3월 말까지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6월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지사 후보를 다 낼 것이라고도 했다.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나 연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재확인했다.

안 의원은 "새 정당은 한국 정치 수십년의 병폐를 뿌리 뽑고 대변화를 기필코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이 말한 대로 지금 우리 정치는 증오와 배제의 정치, 이념과 지역을 볼모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정치다. 이런 낡은 정치에 질린 민심이 지난 대선에서 한 차례 무너진 안 의원과 그 신당에 20% 안팎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의 눈길은 안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벌이고 있는 '양보' 기 싸움에 더 쏠려 있다. 안 의원은 지난 19일 "이번엔 우리가 양보받을 차례 아닌가"라고 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 때 박 시장에게 출마를 양보했으니 이번엔 박 시장이 양보해서 안철수 신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자 박 시장은 다음 날 "시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백 번이라도…"라고 맞받았다.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박 시장이 속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그런 간접적인 표현도 하지 말라면서 박 시장을 나무라고 있다. 안 의원이 뿌리 뽑겠다고 한 '한국 정치 수십년의 병폐'가 그대로 재연되는 모습이다.

안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서 50%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갖고도 5%에 불과했던 박 시장에게 출마를 양보했다. 이 일로 박 시장은 당선되고 안 의원도 대선 주자로 주가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2년여 만에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그런 '정치 드라마'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드라마는 관객의 눈과 마음을 일시적으로 현혹할 수는 있지만 결국 허구일 뿐이다.

정당이 정강과 정책을 세우고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후보자를 공천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한때 아름다운 듯했던 안·박 두 사람의 갈등을 보면서 정치의 기본을 벗어나는 행동은 어떤 대중적 '감동'으로 포장하더라도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라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확인한다. 유권자가 밝은 눈을 갖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런 잘못된 길을 통해 유권자를 유혹하려는 자극적인 시도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안 의원은 이날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안철수 신당이 100년을 갈지 아니면 곧 없어질지는 안 의원 측이 행동으로 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안 의원이 '단일화나 연대는 없다'고 밝혔으면 그대로 가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할 것도 없다. 안 의원이 아직도 극장식 정치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면 신당은 수많은 물거품 정당의 역사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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