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8세기에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 역사 왜곡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에 대한 경쟁의식과 적대감으로 그런 책을 쓴 것이지요."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을 비롯하여 김은숙(한국교원대)·이근우(부경대)·정효운(동의대) 교수 등 일본사 전공자 7명이 '역주(譯註) 일본서기'(전 3권·동북아역사재단)를 번역 출간했다. 2000쪽 분량의 책에는 주석이 절반 이상. 과거 번역본이 몇 종 있었지만, 숱한 논란의 진원지가 된 이 책의 쟁점을 주석을 통해 자세히 해설한 책은 처음이다.

연 위원은 "한마디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양날의 칼과도 같은 책"이라고 말했다. '삼국사기'에도 누락된 한국사의 중요한 사실이 많이 기록돼 있지만, 진구(神功) 왕후가 한반도를 정벌했다거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허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료를 믿고 섣불리 접근하다가는 책 자체의 논리에 빠져들고, 선택적으로 사료를 이용하면 논리적 모순에 부딪히는 책이죠."

연 위원은 "진구 왕후는 13세기 몽골 침입 때에 만들어 낸 가공 인물이었고, '임나일본부'는 일본과는 무관하게 가야가 설치한 기관이 왜곡 기록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은 이후 일본인에게 잘못된 한국관(觀)을 심었다. 근대 일본의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의 근거가 됐고,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됐다.

왜 서기 8세기 일본은 이런 '원초적 역사 왜곡'에 나섰던 것일까? "일본은 8세기에 율령(律令)국가로서 중앙집권 체제 구축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역사서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유민들이 일왕의 신하로 편입된 것을 근거로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야를 '일왕의 신하국'인 것처럼 둔갑시켰고, 신라마저도 마치 '조공국'인 것처럼 왜곡했다.

왜 그랬을까? 연 위원은 "당시 삼국을 통일하고 새로 재편된 신라는 일본보다 경제·문화적으로 매우 뛰어난 나라였기 때문에 늘 극복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연 위원은 "현재 일본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은 학문적으로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백제·가야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던 나라'라는 잘못된 학설은 유지되고 있다"며 "'일본서기' 왜곡의 영향이 아직도 계속되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