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처럼 늙고 싶으냐고 삼십대인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착한 순으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정원(기자·33)은 동화작가이자 살림꾼인 타샤 튜더를, 강보라(기자·31)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라며 우아한 악역 전문인 주디 덴치를, 황예인(편집자·30)은 "우리의 이상형은 단연코 윤여정"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이기원(기자·34)은 "시간을 배반하는 동물성 노인이 되고 싶다"며 김훈을 꼽았고, 다니엘 튜더(칼럼니스트·31)는 "아이처럼 호기심 많은 노인"이 되고 싶다며 믹 재거를, 박정홍(미술가·34)은 "나이를 잊게 만드는 노인"이 되고 싶다면서도 딱 들어맞는 노년의 롤모델은 없다고 했다. 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오노 요코.
상대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즉흥적인 인선(人選)이었지만 아무 맥락 없는 말은 아니었다. 적당한 가벼움과 상냥함, 뻔하지 않은 유머, 무엇보다 잰 체하지 않는 태도를 그녀의 이미지로부터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떠올린 단어는 따로 있었다. '문화노인(文化老人).'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서문에 나오는 단어다. "20여년간, 내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중국의 '문화노인'들이 연재 도중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베이징이나 홍콩, 타이베이를 가도 만날 사람이 거의 없다." 이 문장을 읽고서는 나의 '문화노인'들을 생각했다. 이곳에 있는 그들과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그들을 떠올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들을, 그들의 문장을, 얼굴을, 눈빛을.
유일하게 만남이 허락된 문화노인에 대해 말하고 싶다. 1938년생인 그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산다. 책의 여백에 자유롭게 메모를 하며 만년의 독서를 이어간다. 그로부터 그런 책 읽기 방식이 '마지널리아(marginalia)'라고 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다방 커피를 마시지만 이탈리아 식당에 가면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한다. 그를 따라 주문한 에스프레소 더블을 마시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메모를 한다.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 그는 민망해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사십 년 넘게 어린 나에게도 말을 높이면서. 이런 식으로 밥과 이야기를 얻어먹은 게 몇 번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여전한 현역, 문학평론가 김병익(75) 선생이다.
최근에 곤란한 일이 있었다. 선생은 내가 인터뷰했던 자신의 사진을 인화해주길 청했다. 영정사진으로 쓰겠다며. 영정사진이라고요? 이렇게 되묻고는 먹먹한 기분이 되었다. 여전히 건강한 그이지만 잘 나온 사진들은 인화해서 간직한다고 했다. 언젠가 쓰일 영정사진의 후보 선수들을 비축한다는 취지로.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어떤 친구에 대하여, 부인을 간병하느라 건강이 나빠진 또 다른 친구에 대하여, 암 수술을 받고서 투병 중인 친구에 대하여. 여건이 되는 선생의 벗들은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내가 경외할 만한 문화노인들이 그 자리에 모일 것이다. 여전히 글을 읽고 쓰는 현역들. 선생의 어떤 책 제사(題詞)에 있던 이 문장을 떠올려본다.
"우리들의 남은 젊음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