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탄생 120년을 하루 앞둔 25일 마오의 고향인 후난성 샹탄(湘潭)현 사오산(韶山) 마을은 전국에서 몰려온 추모객들로 넘쳐났다.
붉은색 축하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가운데 마을 광장에 있는 마오 동상에는 아침부터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살짜리 아들을 안고 온 저우(周)씨는 아들을 머리 위로 받쳐 들고 허리를 깊게 세 번 숙였다. 그는 "아들의 무병장수를 빌었다"고 말했다. 사업가 자오(趙)씨는 400위안(7만원)짜리 화환에 마오 얼굴이 새겨진 100위안짜리 지폐를 꽂으며 사업 발전을 기원하는 글을 적었다.
마오의 공산 혁명을 기리기 위해 간절하게 허리를 굽히는 추모객은 많지 않아 보였다. 동상 앞을 메운 화환에는 '부(富)'와 관련된 문구가 많았다. 중국인은 그를 재신(財神)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베이징대의 한 교수는 "마오는 중국인 마음속에서 종교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광장 관리원은 "승진과 출세를 빌기 위해 오는 당 간부와 기업 간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오산은 1893년 마오가 태어날 때만 해도 후난성의 대표적 오지였다. 지금은 후난성 성도인 창사(長沙)공항에서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바로 연결된다. 사오산을 방문한 '마오 순례객'은 10년 전만 해도 연간 100만명 수준이었다. 올해는 탄생 120년을 앞두고 11월까지 1000만명이 방문했다. 지난 9월까지 사오산의 관광 수입은 20억406만위안(약 3500억원)으로 작년보다 20% 이상 늘었다.
인구 12만명의 작은 농촌이 '마오 성지(聖地)'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오산에 있는 '성지호텔'에는 방 천장에 마오 그림이 그려져 있다. 침대에 누우면 마오가 웃으며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날 크리스마스를 맞은 사오산에선 캐럴 소리는커녕 산타 얼굴도 보기 어려웠다. 대신 마오 얼굴을 새긴 각종 주화·배지와 조각품 등이 상점을 가득 채웠다. 한 관광객은 "예루살렘이 기독교 성지라면, 사오산은 마오를 사랑하는 중국인의 성지"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지도자에 대한 숭배나 신격화를 금지한다. 그러나 마오가 '반신(半神)'으로 추앙되는 것은 묵인하는 분위기다.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신(新)중국 창건, 공산당 건립 등 마오의 공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마오의 숙청에 휘말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던 덩샤오핑(鄧小平)은 과거 "마오의 공(功)은 70%이고, 과(過)는 30%이다"는 말로 마오에 대한 평가를 정리한 바 있다.
'마오 열기'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빈부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마오는 평등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족 간 충돌 등 분열 요소가 많은 중국이 마오를 통합의 매개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 9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마오 시절 문화대혁명의 유물인 '자아비판'을 끄집어내 지방 관료의 무사안일을 다그쳤다.
'마오 부활'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후난성 정부가 마오 기념사업에 155억위안(약 2조7000억원)을 투입하고, 광둥성 선전시에선 1억위안(약 174억원)짜리 '마오 황금상'이 등장하는 등 낭비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다. 시 주석이 마오 행사를 "장중하면서도 소박하게 치르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당국은 지난달 마오 기념음악회에서 마오의 이름을 뺐고, 관영 CCTV는 마오 탄생 120년을 기념해 제작한 드라마의 제목을 '마오쩌둥'에서 중국 혁명 원로 중 한 명인 '녜룽전(聶榮臻)'으로 바꿔 방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