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공판검사,여성 최초 부장검사,여성 최초 차장검사, 여성 최초 지청장…. 검찰 내 수많은 '최초' 타이틀을 달아온 조희진(51·연수원 19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이번엔 '여성 최초 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19일 단행된 법무부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자 7명 명단에 오른 것이다.24일 서울고검 차장으로 부임하는 조 검사장은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검찰 내 25%를 차지하는 후배 여검사들에게 비전을 준 것 같아 검사가 됐을 때보다 더 기쁘다"며 "개인적 영광을 떠나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여성 검사장 역할을 잘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조 검사장이 검사로 임용되던 1990년 검찰은 여성의 불모지였다. 조배숙 전 의원, 임숙경 변호사가 1982년 여검사로 임용됐지만 4~5년 만에 판사로 전직해 여검사는 전무했다. 당시 법조인들 사이에선 '여자가 검찰에서 버틸 수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조 검사장이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기춘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 "검찰에도 여성이 기여할 부분이 있고, 여성에게 얼마든지 개방돼 있다"고 강연하면서 조 검사장은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19기 여성 중 혼자서 검찰에 지원했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주변에서 '부드러운 여장부' 소리를 듣는다. 털털한 성격이지만 과격하진 않기 때문이다. "사건 관계인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내 강점"이라고 말할 만큼 경청의 미덕을 가졌다.
여검사라 서러웠던 점도 많았을 법하지만 "성격이 무뎌서 그런지, 주변에서 배려를 해줘서 그런지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도 남성 중심의 경직된 검찰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야근과 폭탄주를 일삼다가 건강을 크게 해친 적이 있다. 검사 생활 4년 만인 1994년 출산과 함께 찾아온 장 질환 때문에 큰 수술을 받고 10개월간 휴직해야 했다. 조 검사장은 "그때 아팠던 경험으로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다"며 "욕심이나 조바심이 사라졌고,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과 이해심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해마다 변호사 업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심심치 않았지만 여검사의 상징이 돼버린 자신에게 바라는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올해 검사장에 오르지 못하면 사표를 낼 생각도 했지만 검사장 승진 여부와 상관없이 검찰에 계속 남아 여검사들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조언을 해준 선배님도 많았다"고 말했다.
검사장 자리가 크게 줄어들어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이번 검찰 인사에선 "여성이라고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일부 검사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조 검사장은 이에 대해 "하지만 여성 검사장의 역할이 분명히 있고, 검사와 수사관 임용자 절반이 여성인 시대에 여검사들의 사기 진작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에서 '최고참 여검사'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1998년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으로 일하면서 전국 검찰청에 가정 폭력 전담 검사를 두는 제도를 도입했다. 1993~1994년 시민단체들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하고 성폭력처벌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당시 조 검사장은 태스크포스에 참여했다. 조 검사장은 "이제 여성이 무엇을 처음 한다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