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교직 생활을 통틀어 오늘처럼 보람 있는 날은 처음입니다."

허남호(50) 철원고 교사가 단상에 오르자 그의 스승 김영각(64) 전 인제교육장이 힘껏 손뼉을 쳤다. 김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해야 할 처지였던 허 교사에게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내주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은사(恩師)'다.

35년이 흐른 후 김씨는 중학생이던 제자가 어느덧 교직 생활 27년 차 교사가 돼 '2013 올해의 스승상'을 받는 자리를 찾았다. 허 교사는 올해의 스승상 시상식장에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스승인 김씨를 초대했다.

"전근을 가서도 제게 수학 문제집을 우편으로 보내주셨던 선생님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상은 저를 비롯해 제자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던 스승님께 바칩니다."

17일 오후 서울시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2013 올해의 스승상’시상식에 참석한 수상자들. 왼쪽부터 김승표(서울 천호중), 이영미(서울 가재울중), 장귀선(경남 밀성제일고), 육미선(경기 양수중), 김정희(충북 청주성신학교), 허남호(강원 철원고), 진기용(충남 디자인예술고), 심미순(충북 회인초), 김은경(서울 이태원초), 이병천(강원 원주고), 최창준(전남 광양제철초), 변진희(경남 진주문산초), 최은희(강원 횡계초 병설유치원) 교사.

교육부와 조선일보사, 방일영문화재단이 공동 제정·시상하는 '2013 올해의 스승상' 시상식이 17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렸다. 열정과 헌신으로 교단을 지킨 교사들을 발굴해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된 '올해의 스승상'은 지난 2002년 첫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지금까지 교사 총 143명이 이 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승표(서울 천호중), 김은경(서울 이태원초), 김정희(충북 청주성신학교), 변진희(경남 진주문산초), 심미순(충북 회인초), 육미선(경기 양수중), 이병천(강원 원주고), 이영미(서울 가재울중), 장귀선(경남 밀성제일고), 진기용(충남 디자인예술고), 최은희(강원 횡계초 병설유치원), 최창준(전남 광양제철초), 허남호(강원 철원고) 등 교사 13명이 참석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1000만원과 연구실적 평정점(교사 승진 시 필요한 점수) 1.5점이 부여됐다. 연구실적 평정점 1.5점은 교사가 석사 학위를 취득할 때 받는 점수와 같다.

시상식에는 제자와 학부모, 동료 교사 등 200여명이 참석해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수상자 13명이 한 명씩 호명돼 단상에 오르자 시상식장 곳곳에서 '김승표 선생님 최고' '이영미 선생님 알라뷰'라는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상을 받은 김은경 서울 이태원초 교사는 "즐겁게 아이들과 음악수업을 했을 뿐인데 이런 큰 상까지 받게 돼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며 "지역 여건상 다문화 가정 아이가 많은 이태원초등학교가 음악을 통해 하나 되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시상식 격려사에서 "우리나라가 인재 강국으로 거듭나기까지는 제자들을 자식처럼 보살피는 선생님들의 희생이 주요했다"면서 "교육적 권위를 흔드는 사건들로 힘드신 때에 선생님들의 노고를 되새겨보는 자리가 마련돼 기쁘다"고 말했다.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은 인사말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로지 제자들의 밝고 힘찬 앞날을 위해 사랑과 열정을 다 바쳐온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앞으로도 조선일보는 한국 교육 현장에 대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장에는 올해의 스승상 심사위원장인 정원식 전 국무총리,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올해의 스승상 수상자 모임인 '한올회' 회원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