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서울지하철 5호선의 하남 연장선 착공을 앞두고 불량 선형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에서 끝나는 5호선 본선(本線)을 경기도 하남시까지 연장하며 굴곡도 높은 'ㄷ자' 노선이 그어졌기 때문이다.
'ㄷ자' 노선은 열차가 급곡선 커브를 두 번이나 돌아야 해 열차 탈선의 위험성이 높다. 급곡선 회전 시 열차 바퀴와 철도 선로의 마찰로 인해 마찰소음이 극심하고, 선로 마모로 추가 보수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 지난 12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 사망사고 역시 허드슨강을 끼고 도는 급곡선 구간에서 일어났다.
국토교통부와 경기도가 내놓은 5호선 하남 연장선 기본계획에 따르면, 하남 연장선은 H2(가칭)역에서 H3역까지 'ㄷ자' 노선을 그린 뒤 H3에서 H5까지 재차 'ㄷ자' 형태를 그린다. 열차 선로가 'ㄷ자'를 두 번이나 그리게 되면서 5호선은 불과 7.725㎞의 짧은 구간에 급속선을 4번이나 회전하는 아찔한 주행을 해야 하는 셈.
특히 문제가 되는 H2에서 H3 구간은 역 간 거리가 2.089㎞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 광역도시철도과의 김진성 사무관은 주간조선에 "좀 휘어지는 부분이 있다"라면서도 "지도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전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확정 승인한 5호선 하남 연장노선은 당초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 올라간 안(案)과도 차이가 있다. 당초 하남시가 5호선 연장을 추진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에 올린 안은 H2(가칭)에서 H3 구간을 상대적으로 직선으로 연결하는 노선이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지난 11월 20일 확정고시한 안에서는 기존 예비타당성 조사안에서 한강변 미사리조정경기장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ㄷ자' 노선으로 변했다.
경기도 철도물류국의 차경환 철도건설팀장은 "중앙대의 하남 이전이 무산되는 등 예비타당성 조사 때와는 여러 가지 여건이 바뀌었다"며 "(ㄷ자) 해당구간의 경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쪽에서 주변 상권 활성화 요구를 내놓으면서 기존 노선보다 조금 더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차 팀장은 "도시철도건설 기준에 부합하게 설계해 열차 안전과 소음 등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김진성 사무관은 "노선이 좀 바뀌면서 사업비가 약간 줄어드는 것으로 안다"며 "철도 노선 같은 경우는 기존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설계가 완전히 뒤바뀌어서 기존 예산을 20% 이상 초과하지 않으면 다시 조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경기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5호선 하남 연장선의 'ㄷ자' 노선 설계로 5호선은 '소음철'이란 오명을 못 벗을 것으로 보인다. 쌍(雙) 'ㄷ자' 노선은 급곡선 회전 시 최소 네 차례 고막을 찢는 듯한 선로 마찰소음이 발생한다.
1996년 완전 개통된 5호선은 전 구간이 지하터널로 돼 있고, 급곡선과 급경사 구간이 많고 터널 내 흡음설비가 열악해 일부 구간에서는 옆 사람과 대화조차 힘들다. 밀폐식 이중창을 부착한 특수방음열차를 투입했으나, 5호선 소음은 줄곧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돼 왔다.
이는 5호선의 부적절한 노선 설계와 잦은 설계 변경이 누적되며 일어난 문제다. 5호선이 처음 계획된 것은 1971년이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5호선은 연희동~종로~천호동을 잇는 노선으로, 도심부는 1호선과 종로구간(종각~동대문)을 노선 공유한 뒤 지금의 신설동역(1·2호선)에서 성수지선(2호선)을 사용해 답십리로 빠지는 노선이었다. 신설동역 지하에는 지금은 영화 세트장으로 변해버린 5호선 정차를 대비한 지하역사(속칭 유령역)까지 미리 조성해 놨을 정도다.
◇ 'ㄷ자' 노선이 생긴 것은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의 무리한 민원을 일일이 반영하다 생긴 '게리 맨더링'
하지만 설계 변경으로 5호선이 1호선과 노선을 공유하는 대신 도심부 주택가를 미로처럼 통과하는 노선으로 바뀌며 문제가 생겼다. 충정로와 새문안로 지하를 타고 오던 5호선이 광화문에서 주택과 상가밀집지(광화문~을지로4가) 아래를 통과해 도심부를 빠져나가는 것. 간선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대신 협소한 골목길과 주택가 아래를 통과하며 급곡선이 더 많아졌고, 소음이 증폭되자 소음을 줄이려 속도를 낮추는 악순환이 생겼다.
특히 ‘ㄷ자’ 노선은 지하철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대표적 선형이다. ‘ㄷ자’ 노선은 가속 시 원심력에 의한 열차 탈선을 막기 위해 열차 속도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서울지하철 3호선 한강 이남 구간이 대표적이다. 동호대교를 넘어 압구정역으로 내려온 3호선이 급곡선을 통과한 뒤 고속터미널 앞에서 한 차례 다시 꺾고 남부터미널을 통과하며 재차 급커브를 틀어 양재역으로 향하는 구간이다. 해당 구간은 3호선의 속도를 떨어뜨려 ‘강남 마을전철’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다.
5호선에는 이 같은 굴곡구간만도 줄잡아 수십 개가 넘는다. 이로 인해 향후 하남 연장선과 환승 예정인 팔당역에서 승차한 중앙선 승객들은 5호선으로 환승해 서울 도심 진입 시 하남시 관내를 구불구불 돌아 목적지까지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거리를 비교적 직선으로 잇는 구간에 비해 열차가 제 속도를 낼 수 없어 이동소요시간도 자연히 늘어난다.
‘ㄷ자’ 노선이 생긴 것은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의 무리한 민원을 일일이 반영한 탓이다. 3호선 한강 이남 노선의 경우 설계 당시부터 서초·강남 주민들의 접근성만 고려하다 보니 굴곡도 높은 ‘ㄷ자’ 노선이 됐다. 결국 ‘ㄷ자’ 노선은 지하철 속도를 떨어뜨리고 노선 전체 경쟁력을 저해해, 광역버스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지하철 연장을 추진하면서 중장거리 수송에 최적화된 지하철에 단거리 수송 기능까지 기대하며 벌어진 현상이다. 지자체들의 요구로 연장되는 연장선에는 직선이 아닌 곡선형의 노선 설계가 유독 많다. 지난 11월 29일 완전 개통된 분당선 죽전~수원 연장 구간 역시 기존의 직선형 노선에 비해 곡선구간이 많이 추가됐다.
5호선 하남 연장선 역시 하남시의 요구로 사업이 착수됐다. 출퇴근 교통대책을 세워 달라는 하남시의 요구에 2009년 광역교통 개선대책에 하남선(5호선 하남 연장선)이 반영됐고, 2011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완료했다. 계획대로라면 5호선 하남 연장선은 내년 초 착공해 2018년 1단계 완공에 이어, 2020년 전 구간이 개통된다. 투입되는 사업비는 약 9909억원이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씨(철도 파워블로거)는 “도로는 직선인데 열차는 곡선인 것이 우리나라 교통의 고질적 문제”라며 “해당 구간은 하남BRT(간선급행버스) 노선에 비해서도 굴곡이 심하고, 5호선이 강동역에서 상일동행과 마천행으로 분기하는 통에 열차 배차 간격이 길어 승객들이 지하철 대신 버스를 더 선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