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33)의 기타엔 테스토스테론이 흥건하다. 클래식 기타로 스페인 집시음악을 연주하면 감미롭고 여성적일 것 같은데, 이 젊은 기타 명인의 연주는 그 반대다. 그의 새 음반 '캡틴'을 들으며 나일론 줄을 튕기는 일의 마초적 속성을 깨달았다. 현(絃)의 장력(張力)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는 이 연주자는 거칠게 잡아뜯다가 쓰다듬고 깨물다가 깊이 찌른다. 그 연주는 어쩔 수 없이 선정적이다.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같은 다른 악기들이 옆에서 가만히 말린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제가 멜로디를 잘 씁니다." 첫 곡 '겨울날의 회상' 멜로디가 퍽 아름답다고 인사했더니 그가 그렇게 대답했다.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주원은 축구와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뮤지션이었다. 다시 말해 마초였다.
FC바르셀로나의 열혈팬인 그는 이전 1, 2집에도 이 축구팀을 응원하는 곡을 써서 연주했다. 3집 앨범인 신작에도 '승리의 티키타카'라는 응원곡이 있다. '티키타카(tikitaka)'는 짧은 패스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이 곡이 나머지 9곡을 압도한다. 박주원이 곡 말미에서 처음으로 일렉 기타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에 가지 않고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삼각패스를 주고받던 연주는, 돌연 전기기타가 등장하며 하프라인을 넘는다. 좌우 윙이 동시에 적진을 직선 돌파하고 가운데에선 전광(電光) 같은 패스와 석화(石火) 같은 드리블이 불꽃을 뿜는다. 곡은 왼쪽으로 짧게 휘는 크로스로 끝난다. 짜릿한 결말이다. "그 부분이요? 닥공 같은 거죠. 닥치고 공격." 그는 1990년대 위성방송으로 외국 경기를 보면서 축구 보는 눈을 떴다고 했다. "호나우두와 피구가 있던 그때, FC바르셀로나 팬이 됐죠." 그의 음반은 매번 주한 스페인 대사관으로 우송됐다(아쉽지만 반응은 아직 없다).
2009년 갑자기 나타나 현란한 핑거스타일 기타를 선보이며 대중음악계를 놀라게 한 그의 연주력은 이번에도 성큼 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연주해 온 클래식 기타는 그를 일찌감치 '한국 최고의 집시 기타리스트' 자리에 올려놓았다.
"생각날 때마다 곡의 테마를 연주해 스마트폰에 녹음해 놓습니다. 음반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걸 다 들어보고 고르죠. 지금도 한 100개 정도 들어있습니다." 그가 지난 2월에 샀다는 아이폰을 가리켰다.
'캡틴 No.7'은 박지성을 위해 쓴 곡이다. 이 곡 역시 기타 두 대를 동시 연주하는 듯한 박주원의 현란한 테크닉을 확인시켜 준다. 상대 수비수 두 명을 달고 쭉쭉 뻗어가는 국가대표 주장의 뒷모습이 이 곡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박지성 선수의 아우라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특히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한·일 평가전에서 그가 골을 넣은 뒤 무표정하게 일본 관객들을 쳐다보며 산책하듯 뛰던 장면! '산책슛'이라고 부르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래, 이 곡은 박지성을 위해 쓰겠어, 하고 생각했죠."
새 앨범엔 그가 속했던 밴드 '헤리티지'에서 알게 된 신보라(지금은 개그맨)가 '그 멜로디'란 노래를 불렀다. '승리의 티키타카'에서 허밍 같은 스캣을 들려주는 이는 정엽으로, 역시 군대(해군 홍보단)에서 만난 사이다. 즐겨 연주하던 외국 노래 2곡도 실렸다.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와 레인보우의 'Temple of The King'이다.
박주원은 신승훈 백밴드에서 연주하다가 어느 날 솔로로 독립했다. 신승훈 일본 투어에 갈 예정이어서 두 달 스케줄을 비웠는데 갑자기 기타리스트가 바뀌면서 할 일이 없어졌다. 그때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솔로 앨범을 시작했다. 그를 해고해준 신승훈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