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일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과거에도 '종파(宗派) 사건'을 이용해왔다. 종파주의는 개인이나 분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인민 독재의 대표자인 수령에게 대항해 파벌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종파주의는 당과 수령·인민에 대한 배신행위가 된다.

김일성은 자신의 1인 독재 체제 구축을 위해 1956년 이른바 '8월 종파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소련에서는 흐루쇼프 집권 이후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됐다. 스탈린을 따라 개인숭배를 강화하던 김일성은 위기감을 느꼈다. 김두봉, 최창익 등을 중심으로 한 '친중파(연안파)'와 박창옥 등을 중심으로 한 '친소련파'는 김일성에게 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이들이 "수정주의에 물들었다"면서 대대적 사상 검열을 실시, 연안파와 친소파를 모두 제거했다.

두 번째 종파 사건은 1967년 이른바 '갑산(甲山)파' 사건이다. 박금철, 김도만, 이효순 등이 주축인 갑산파는 광복 이전 해외에서 주로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한 김일성에게 호응해 함경도 등 국내를 무대로 항일 및 공산주의 조직 활동을 벌였다.

갑산파는 1956년 종파 투쟁 때 김일성을 도와 친중·친소파를 제거하고 김일성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를 구축하는 데 협조했다. 그러나 11년 후에는 자신들이 숙청 대상이 됐다. 이들은 당 간부들에게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 유교 사상을 퍼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숙청됐다.

이 사건은 권력 승계를 앞둔 당시 25세의 김정일이 주도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데 반대했고, 위협을 느낀 김정일이 이들을 종파 분자로 몰아 숙청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갑산파 숙청 이후 후계 구도를 공고히 했고, 1974년 2월 후계자로 공식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