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0개국 대표가 참석해 열린 바르샤바의 기후변화협약 연례 총회는 별 알맹이 없이 끝났다. 유일한 뉴스거리는 필리핀 대표가 연설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다. 그는 울먹이면서 태풍 ‘하이옌’의 처참한 피해를 전하고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도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가 빨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자 각국 대표들은 기립해 위로 박수를 쳤다.
온난화로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고 더 세졌다는 것이 일반 인식이다. 하지만 이게 맞는 말일까?
나 자신부터 반성이 필요하다. 1998년 일인데 어느 경제연구원 보고서를 인용해 '대규모 기상재해 크게 늘어'라는 기사를 쓴 일이 있다. 1990년대 들어 태풍과 호우 같은 기상재해 피해가 커졌다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선 90년대 연평균 피해액이 80년대의 1.8배, 세계적으론 3.4배로 뛰었다는 것이다. 온난화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도 붙였다.
그즈음 국내외 할 것 없이 비슷한 보고서가 많이 나왔다. 나중에야 여기엔 '통계의 맹점(盲點)'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구가 늘고, 경제 규모가 커지고, 해안 지대가 개발될수록 같은 태풍이라도 재산·인명 손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태풍이나 허리케인 가운데는 태평양·대서양 한복판에서 생겨나 바다를 돌다가 소멸되는 것도 많다. 위성 관측은 1970년대에 시작됐다. 그 전엔 관측이 불가능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태풍도 꽤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해안까지 닿은 태풍·허리케인만 갖고 빈도(頻度)를 따지는 수가 많다. 이런 식의 보정(補正)을 거치면 태풍·허리케인 발생 건수는 1950~60년대에 많았다가 90년대까지는 되레 감소했다. 2000년대 들어 다시 증가했다.
바람·태풍 같은 기후 현상은 크게 보면 적도(赤道)와 고위도(高緯度) 지역의 열 에너지 격차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태양이 비추는 각도의 차이로 적도는 뜨겁고 극지방은 차갑다. 바람·태풍은 적도의 뜨거운 열을 고위도 지역으로 분산시켜 열 에너지 격차를 해소시키는 과정이다. 그런데 온난화가 진행되면 열대 기온은 약간만 올라가고 극지방 기온은 대폭 올라간다. 기후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렇게 되면 적도와 극지방 사이 기온 격차는 좁혀진다. 태풍·허리케인의 발생 빈도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열대 바다에 축적되는 태양열의 크기 자체는 커져 태풍 강도는 강해진다는 주장이 꽤 있다. 이 부분은 여러 견해가 갈리는 것 같다.
지난 9월 말 나온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5차 기후변화 보고서는 세계 기후학자들의 합의(合意)된 견해를 집약한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열대 태풍 활동이 커질 가능성'에 대해 '낮은 신뢰도(low confidence)'라고 결론 내고 있다. '낮은 신뢰도'를 굳이 수치로 표현하면 20~50%의 확률을 말한다. 우리 말로 하면 '그다지 생길 것 같지 않은 현상' 정도라고 할까.
5년, 10년 후 새 증거가 나와 과학계 견해가 또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현 단계 과학 인식으론 온난화로 태풍 빈도가 증가한다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온난화 관련 가설이 100개쯤 된다고 할 때 이 가운데 네댓 개가 과장·오류로 드러나는 바람에 다른 주장들까지 도매금으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온난화 관련 논란이 그런 상황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