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회사 화웨이가 우리나라 이동통신망 시장에 진출한 것에 대해 미국이 동맹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3일 미국 정부 관계자가 비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데 이어, 4일 미 국가안보 담당 상원의원들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화웨이가 한국에 납품할 장비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미 관계자들은 화웨이의 통신 기기를 통해 동맹국 간 통신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한-중간 경제 거래에 미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개입하면서 중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로서는 중국과 경제 협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과는 안보 동맹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여서 곤란한 상황이 됐다.
◆ 美 "안보 우려된다"…화웨이 스파이 논란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는 지난달 LG유플러스의 광대역 LTE 기지국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내년 상반기까지 진행할 2.6기가헤르츠 대역의 광대역 LTE 전국망 구축과 관련한 장비 공급업체 중 하나가 된 것. 이번 사업은 1조원이 넘는 규모로, 화웨이는 2000억원 이상의 장비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통해 세계 각국을 도·감청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날 익명을 요구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관료는 WSJ에 "한국이 무선통신망 확대를 위해 도입하려는 화웨이의 기지국 장비가 동맹국의 소통을 감시하는 도구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며 "안보 문제가 민감한 부분인 만큼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 상원도 공개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의 다이안 페인슈타인 상원 안보위원회 위원장과 로버트 메넨데즈 외교위원장은 지난주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 국장 등에 서한을 보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들은 서한에 "한국은 미군 주둔 지역으로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며 "화웨이가 한국의 광대역 사업에 참여하면서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적었다.
미국이 화웨이의 사업에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미국은 국가 안보 문제를 들어 화웨이가 미국의 무선통신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봉쇄했다. 지난해 호주 역시 광대역 무선통신 사업에 화웨이가 입찰하는 것을 막았다. 지난해 10월 미국 하원은 정보 위원회 보고서에서 "화웨이의 통신 장비에 중국 정부가 이메일을 추적하고 통신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기술이 있다"고 밝혔다.
◆ 美 사업 철수하겠다는 화웨이…韓은?
WSJ는 이번 화웨이의 한국 진출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한층 고조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 정보국과 군은 중국의 사이버 감청이 자국 방어 체계와 기업에 큰 위협이라고 경고해왔다. 중국은 지난해 인민해방군 안에 사이버 해커 부대를 창설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감청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한국은 미군 주둔지인데다가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있는 곳.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인 셈이다.
여기에 최근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 양상도 문제를 더한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가운데,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을 지지하고 나선 것.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한 조 바이든 부통령이 회담에서 화웨이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화웨이는 미국의 이런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윌리엄 플러머 화웨이 대변인은 "화웨이는 세계적으로 인증된 이동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이 제기한 도감청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화웨이는 미국과 중국 정부 간 싸움에 끼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밝혔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LesEchos)'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휘말리면서까지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계속되는 의혹 제기에 사업 철수까지 불사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이다.
◆ 美와 中 사이에 낀 韓
한국과 중국 기업 간 거래가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하자 한국은 난처한 입장에 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방향타를 잘못 잡으면 손실을 볼 수도 있는 상황. 어느 한 쪽을 편들면 동맹국 또는 경제적 이득을 놓치게 될 위기이다. 미국 정보국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한국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경계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미국 정보국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한국과 중국이 최근 경제적 협력 관계를 다지고 있다"며 "일본에 대한 반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