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맘때쯤이다. 여의도 MBC 사옥 1층에는 직원들이 이용하는 매점이 있다. 포도주스 두 병을 사서 앉으니 약속 시간 10분 전, 면바지에 연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흘러내린 앞머리를 집게 핀으로 고정시킨 김주하가 걸어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방송 전 분장을 받으니 화장할 필요가 없고, 뉴스 시작 전까지는 뛰어다니는 게 일상이니 운동화가 편하다고 했다.
김주하가 말하는 여자의 자격, 워킹맘의 고뇌
이라는 프로그램이 한 창 인기를 끌 때였고, 이를 패러디한 이라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김주하는 마감뉴스 앵커와 보도국 기자로 하루 서너 시간 쪽잠을 자며 지내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여성들이 하면 떠올리는 인물로 김주하 앵커를 꼽는다’는 말에 시간을 냈다. ‘(여자가) 죽기 전에 해 봐야 할 일 101가지’라는 주제로 김주하와 이야기를 나눴다.
“평일에는 기자로 현장에 나가고, 주말에는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다보니 아내,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거의 못하고 있죠. 애 얼굴을 30분도 채 못 봐요. 남편이랑 종종 마찰을 빚는데, 뭐라 할 말이 없어요. 남편이 자주 혼잣말 하듯 그래요. '우리 애는 평생 엄마가 해주는 밥은 못 먹겠다'구요. 평일에는 친정 엄마가 준서(큰 아들)를 돌봐주고, 주말에는 남편이 도맡아 챙겨요. 무작정 제 욕심만 챙기며 희생을 계속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니 방법을 찾아야죠. 아내, 엄마로서의 자리도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좀 막막해요.”
사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 자신의 저서 에도 온통 뉴스와 취재 이야기만 썼을 정도지만, 인터뷰 중 질문을 가려가며 대답하진 않았다. 뉴스데스크 ‘최초 여성 단독 앵커’는 ‘워킹맘’의 다른 이름이었고, “TV에 나오는 엄마를 보고 달려오던 아기가, 화면 속 엄마가 안아주질 않자 울면서 돌아갔다”는 게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상이었다.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대학 진학과 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 결혼이라는 ‘장벽’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맞아, 나도 그 땐 그랬지. 그게 참 큰일이었지”라며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근데, 그게 알아요? 결혼 하고 나면 더 큰 일도 많아요.(웃음) 육아휴직은 결코 휴가가 아니라는 걸 난 결혼해서 알았어요” 라며 겁을 주기도 했다.
김주하는 뭇 여성들이 자신을 ‘롤모델’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했다. 아마 자신이 아니라 "앵커라는 ‘자리’에 대한 동경일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가족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 에서도,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밤늦게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잠을 못 자며 고민을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측은했는지 한 가지 아이템을 제보해 주었다. …마침 4월 5일 반쪽짜리 휴일이었다. 남편은 평소 나와 함께하지 못하는 게 늘 불만이었기 때문에 함께 지내려고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난 좋은 생각을 해냈다. 남편과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요금을 비교하면서 바가지 요금을 받는지 확인해 보는 것! …내 취재이므로 내가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당신은 기자이기 이전에 내 아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문제의 택시에 태웠다.” - 14~16p-
9년 전 결혼, 속속 드러나는 진실
인터뷰 후로 종종 안부를 주고 받았다. 한 발 앞서가는 선배로 '힘들때일수록 유쾌한(, 손석희의 추천사 중)' 모습을 보여줬다. 2011년에는 둘째 딸인 ‘준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2012년에는 남편,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배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구나’ 생각했는데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지난 9월 23일 그가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과 양육자 지정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 여기에 남편 강필구 씨의 접근을 막아달라며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이유는 본인과 두 자녀에 대한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이었다.
뉴스를 전하던 사람이 뉴스의 중심이 됐다. 김주하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9년 전 있었던 두사람의 결혼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2004년 10월 9일, 김주하는 외국계 기업인 맥쿼리 증권사에 근무하던 세 살 연상의 강필구 씨와 결혼했다. 장소는 여의도 63빌딩, 주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맡았다. ‘교회에서 만난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어 결혼에 이르게 됐다’는 게 당시 알려진 바였는데, 최근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먼저 두 사람의 결혼이 있기 두 달 전, 남편인 강필구 씨가 미국에서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강씨는 2003년 7월 21일 미국 메릴랜드 주 법원에 전 부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2004년 8월 5일 법원으로부터 이혼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후인 10월 4일, 김주하와 결혼식을 올렸다. (김주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첫 아이 준서를 낳은 뒤 알았다는 게 김주하 측 지인의 주장이다.)
두 사람은 1년 정도의 교제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때문에 강 씨가 유부남의 신분으로 김주하와 교제를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난 계기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던 강 씨의 어머니 이 씨가 직접 김주하가 다니는 교회인 순복음 교회에 찾아와 김주하에게 “아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결혼 사실이 알려진 것 역시 김주하가 아테네 올림픽 중계로 그리스 출장을 간 시점, “강씨가 결혼을 서두르며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고 했다.
“착하고 가부장적이지 않은 모습에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가정적인데다 매너가 좋은 사람이다. 원래 결혼을 할 시기만 남아있었는데, 자꾸 소문이 나다보니 양가 부모님과 남편이 내가 해외출장을 간 사이 날짜를 잡고 준비를 시작했다.” -김주하, 결혼 당시 언론인터뷰 중-
김주하는 인터뷰에서도 종종 남편을 ‘가정적인 사람’으로 소개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데, 이를 함께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주하는 2006년과 2011년 출산을 이유로 두 차례 육아휴직 기간을 보냈다. 그동안 자신이 차려준 밥상에 남편이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고 했다. 마감뉴스를 진행하는 동안(2008년~2011년)은 ‘오후 3시 출근, 새벽 3시 퇴근’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 남편이 불평하는 게 예전에는 스트레스였어요. ‘난 불행해. 왜 내 일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를 만났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깨달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남편의 외로움은 나랑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었는데, 제가 참 바보 같았죠.” - 김주하, 2009년 인터뷰 중-
접근금지, 상습폭행, 존속폭행... 점입가경 이혼소송
김주하는 증거자료로 진단서를 동봉했다. 2008년 7월부터 총 네 차례에 걸쳐 폭행했고, 각각 2~4주 정도의 상해를 입혔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남편 강필구 씨 역시 10월 9일 '말다툼 중 김주하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김주하를 폭행 혐의로 맞고소 했다. 강씨의 변호인은 한 연예방송에서 "재산 명의자가 대부분 김씨로 돼 있어 향후 이혼소송에 대한 반소를 제기하면서 재산분할도 신청할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 이씨도 가세했다. 두 사람의 집에서 아들의 짐을 싸서 나오던 이씨가 김주하에게 ‘존속폭행과 협박’을 당했다며 고소한 것. 당시 목격자인 이삿짐센터 직원의 증언과 양측의 입장을 들은 경찰은 ‘협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던 10월 초 강씨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한 결과 자신이 대마초를 피웠다고 시인했다"고 했다. 머리카락과 소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분석한 결과는 음성.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음성 판정이 나와 기소유예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씨 모자는 가수 송대관과 인연이 깊다. 강필구 씨는 가수 송대관의 처조카다. 김주하 부부가 송대관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대관의 부인인 이(정심)씨와 강필구의 어머니인 이씨는 자매지간, 이씨는 미국 워싱턴에서 노인복지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심씨 역시 부동산 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는데 사업실패로 자산이 압류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다 제 각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주하 부부의 불행이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 는 결국 안나의 파멸로 막을 내린다. 누군가는 유난한 삶을 산 안나를 손가락질하고,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세계를 깨보려고 했던 안나를 부러워한다. 여성들의 롤모델인 ‘김주하의 이혼소송’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혹자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혀를 차고, 혹자는 “김주하도 별 수 없구나” 라고 안타까워한다.
가십이 끝나면 사람들은 새로운 가십을 찾아 떠나겠지만, ‘성공한 여성의 불행한 가정사’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거기에 ‘성공을 포장하지 않고, 행복을 과장하지 않았던’ 김주하도 포함된다는 게 현재로서는 애석할 뿐이다.
워킹맘으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조금 그래요. 일과 가정과 학업과 육아…. 이게 정말 힘들어서 하나를 놓고 싶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게 되거든요. 그럴 때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 하나를 포기한다면, 지켜보는 이들에게 실망을 주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실감하죠. 저는 알파걸은 없다고 생각해요. 설사 지금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갈 거예요.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2010년, 여성조선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