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연예인이나 공인 등의 이혼 보도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김주하 앵커의 이혼소송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하다.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로 선정될 정도로 젊은 여성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은 김주하는 일과 가정 모두 성공한 듯했다. 방송을 통해 남편을 '가정적인 남자'로 소개하는 한편, 2011년에는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거치며 단란하게 사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해에는 남편과 아들, 세 가족이 아프리카 봉사도 다녀왔다. 또 1년여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방송에 복귀해 다시 뉴스 진행자로 돌아온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김주하 "그동안 맞고 살았다"
지난 9월 23일 김주하는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과 양육자 지정 소송을 제기하면서 남편에 대해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남편 강 모 씨의 상습폭행이 그 이유였다. 김주하는 '남편 강 씨가 상습적으로 폭행을 했다. 남편이 귀를 때려 전치 4주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고소장과 함께 전치 4주 진단서를 증거로 첨부했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주하는 결혼 기간 내내 남편 강 씨의 폭행에 시달려왔고, 본인뿐 아니라 두 자녀들까지 가정폭력에 노출됐다'고 한다. 김주하의 지인은 한 매체 인터뷰를 통해 "강 씨는 결혼 기간 내내 폭력을 행사했다"라면서 "화가 나면 무차별로 폭행을 가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손을 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확인시켰다. 김주하가 이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로 보인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듯하다. 이 지인은 "주위에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공인이라는 사실, 특히 자신을 멘토로 여기는 여성들을 위해 혼자 참고 또 참았다"라고 전했다.
또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외에 2건의 소송이 더 있는 것을 볼 때, 가정폭력 외에 또 다른 귀책사유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지인은 그 사안에 대해서는 "김주하가 공개를 원치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남편 강 모 씨 "나도 맞았다!"
남편 강 모 씨 역시 이혼소송과 양육자 지정 등 반소(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중 피고가 원고에게 제기하는 소송)를 제기했다. 그는 이혼의 책임이 자신이 아닌 김주하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9일 강 씨는 '말다툼을 벌이던 중 김주하가 때렸다'며 폭행 혐의로 아내를 맞고소했다.
게다가 강 씨의 법률대리인은 한 연예방송에 등장해 폭행 건에 대해 해명하고 그동안 강 씨가 오히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9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상습폭행을 당했다는 원고 김주하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남편 강 씨가 공개석상에서 김주하에게 수차례 뺨을 맞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
재산 분할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재산 명의가 대부분 김주하로 되어 있는 만큼 재산 분할 신청도 할 계획이다."
부부의 상해·폭행 맞고소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1월 13일 남편 강 씨의 김주하에 대한 상해·폭행 혐의에 대해 모두 기소(법원에 심판을 요구하는 일) 의견으로 검찰 송치를 결정했다. 김주하의 남편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과정 중 "남편 강 씨는 폭행 혐의 일부를 시인했다"라고 밝혔다. 또 강 씨가 '부인이 손톱으로 손등을 할퀴었다'며 맞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 경위가 부정확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를 결정했고, '말다툼 중 부인으로부터 뺨을 맞았다'며 2차 맞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김주하가 혐의를 일부 시인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시어머니, 김주하에게 폭행당했다?
부부의 고소와 분쟁에 시어머니도 가세했다. 김주하의 시어머니가 김주하를 존속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 것. 김주하의 시어머니는 "아들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했고, 잠시 별거해보라며 이삿짐을 싸던 중 집에 들어온 며느리가 내게 커터 칼로 '너 오늘 나한테 죽어볼래?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 하고 협박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주하는 "이삿짐에 내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커터 칼로 이삿짐을 풀던 중 시어머니와 언쟁이 있었을 뿐이다"라며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무혐의로 결론 났다. 경찰은 이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인 이삿짐센터 직원이 상반된 진술을 하는데다 김주하가 제출한 녹취록에 따르면 사건 당시 시어머니가 목격자를 그냥 돌려보냈다"라면서 "정황상 김주하가 시어머니를 협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언론을 통해 시어머니 이 씨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 씨는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노인복지사업을 하는 유명인으로, 지난 2011년에는 세계한민족여성재단이 뽑은 '세계여성기업인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이 씨는 가수 송대관의 아내와 친자매간이다. 김주하는 과거 인터뷰에서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시어머니 덕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혼소송, 본격화된다
이혼은 먼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후 조정 단계를 거치게 되며,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재판을 하게 된다.
김주하와 강 씨 부부 역시 지난 11월 6일 서울가정법원 조정실(가사 7단독)에서 첫 이혼 조정을 거쳤다. 김주하의 이혼 및 양육권 지정 소송에 대해서다. 김주하는 조정기일을 이틀 앞두고 대형 로펌과 손을 잡았다. 국내 대형 법무법인(유한) 화우의 변호사 6명을 원고 소송대리인으로 위임한다는 소송위임장을 제출했다.
조정기일에 김주하 쪽은 변호인만 출석했고, 남편 강 씨는 피고인 신분으로 변호인과 함께 출석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첫 조정에서 이들은 이혼 사유가 서로에게 있다는 주장만 펼쳤다. 김주하는 결혼생활 중 남편의 폭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남편 강 씨는 김주하가 이혼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조정은 성립되지 못했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으니, 부부의 이혼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강 씨는 지난 11월 11일 법무대리인을 통해 서울가정법원에 '사실조회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실조회신청서란, 소송당사자가 상대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으로 증거자료의 수집 용도로 사용된다. 사실조회신청서는 관례상 이혼소장을 제출할 때 함께 첨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혼소송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지난 11월 15일 이 부부의 이혼소송은 가사합의부로 이관됐다. 재판부가 이 소송을 재정 합의사건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합의부는 판사 3명(부장판사 1명, 단독판사·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된다. 쟁점이 복잡하거나 사건의 성격상 합의체로 심판하는 것이 적절할 경우 합의부가 심리한다. 이들의 이혼이 복잡한 상황이라는 증거다.
남편 강 씨, 대마초 혐의?!
그런가 하면 남편 강 씨에게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강 씨가 최근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받은 것. 이혼소송과 직접 상관은 없지만 이혼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경찰은 "조사 결과, 강 씨가 대마초를 피웠다고 시인했다"라고 밝혔지만, 국과수로 보낸 강 씨의 머리카락과 소변에서는 대마초 음성 판정이 나왔다. 따라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최근 음성 판정이 나와 기소유예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하, 모든 방송 하차
김주하는 지난 2011년 둘째 딸을 출산한 뒤 지난 4월 복귀해 방송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혼소송 이후, 김주하는 진행하던 방송에서 모두 하차했다. 이혼소송이 알려진 지 일주일여 만이다. 진행을 맡고 있던 MBC 와 인터넷에서 진행 중이었던 에서도 하차했다. MBC는 이에 대해 "현재 소속인 인터넷 뉴스부로 돌아가 해당 부서의 업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하 앵커 후임으로 유선경 앵커가 낙점됐다.
김주하 심경 고백 "아이들 위해 현명하게 행동할 것"
기자는 지난해 김주하와 만나 인터뷰를 나눈 적이 있다. 남편 아들과 남아프리카 최빈국 모잠비크에 다녀온 직후였다. 봉사는 부부의 오랜 소망이었다고 했다.
그 당시 인터뷰에서 김주하는 가정적인 남편을 강조한 바 있다. 인터뷰 속 남편은 "기념일을 잊으면 이혼하자"라고 투정 부릴 줄도, 김주하가 육아휴직 중 가정주부로 돌아와 차돌박이를 구워주자 "요즘 정말 행복해"라는 말을 할 줄 아는 남자였다. 인터뷰 속 상황이 거짓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만 그런 행복한 시간 사이에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힘든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2012년 9월호에 실린 김주하의 인터뷰.
부부 싸움은 안 하나요?
선(부부 싸움 하는 시기)은 넘은 것 같아요. 양보할 만한 거는 서로 하니까. 그래도 아직도 가끔 싸우는 부분이 있어요.
결혼기념일 이벤트도 하나요?
저희는 결혼기념일이 두 번이에요. 결혼식을 한국에서 한 번, 미국에서 한 번 했거든요. 결혼 초에 남편이 약속한 게 있어요. 제가 결혼기념일과 생일, 크리스마스를 까먹으면 이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람을 해놔야 해요.
이혼이라니, 정말 극단적이네요. 남편 분이 장난기도 있는 것 같고.
이혼이라는 소리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그만큼 잘 지키겠다는 소리죠. 저희 부부가 약속한 게 몇 가지 있는데, 싸우면 그날을 넘기지 말자, 싸우더라도 등을 돌리고 자지 말자, 그중 하나가 기념일이에요.
남편은 육아휴직 후 온전히 주부로 지내는 아내에 대해 어떤 반응인가요?
남편이 굉장히 가정적이에요. 아이를 많이 낳는 것도 좋아하고. 어제 차돌박이를 구워서 저녁을 먹는데 아이들이 정말 잘 먹는 거예요. 남편이 "나 요즘 너무 행복해." 그러더라고요. 전 가슴이 답답한 게….(웃음) 육아휴직 몇 달 안 남았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막상 집에만 있으면 안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러면 저랑 결혼 안 했겠죠.
김주하 앵커의 현재 심경은…
김주하는 이번 이혼소송에 대해 어떤 기자,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왜 할 말이 왜 없겠느냐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기자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동안 많이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네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모습 속에 이런 사연이 있었네요.
아이 둘 있는 40대 아줌마인걸요.
불편하겠지만,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죄송합니다만, 아이들을 위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듯합니다.
나중에 편해질 때 한번 보죠.
네, 꼭 웃으면서 만날 거예요.
이야기는 좀 더 이어졌지만, 김주하는 시종일관 기자에게 “죄송하다”, “고맙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간결하고 조심스러운 대화 속에서 두 아이에 대한 김주하의 걱정스러운 마음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여전히 맞고 사는 여자들
끊이지 않는 가정폭력,
도대체 왜?
충격적인 가정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동안 저소득층이나 이주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가정폭력. 이제는 고소득층, 전문직 여성, 공인들까지 가정폭력에 신음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7월까지 총 9천5백71건의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이 아내를 학대해 붙잡힌 경우는 5천7백86건에 달했다. 2004년 1만1천4백87건이던 아내 학대 검거 건수는 2009년 9천1백17건, 2011년 4천4백81건으로 감소하다가 지난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법들이 제정, 강화되고 있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히 가정과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들은 왜 맞고 사는가?
A 씨는 1998년 목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주위에서 보면 인자하고 가정적이었으나 실제로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아내를 폭행했고, 임신 중에는 흉기로 위협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A 씨는 이혼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부부 상담 10회를 명령했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도록 허락해주면 이혼을 하겠다는 남편의 말을 믿은 A 씨는 이날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아직도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폭력을 참고 견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모성애가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이혼 후 아이들을 보호할 사람이나 경제적인 여력이 없기 때문에 참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가 결혼한 여성에게 인내를 강요하고 있고 아내들 역시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전문직 여성이나 고소득층 가정은 사회의 시선이나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탓에 선뜻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가정폭력이 심해도 이혼하지 못하고 쇼윈도 부부로 사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보복 가능성도 아내의 발목을 잡는다. 남편의 폭력을 참지 못하고 신고하거나 여성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살해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83명이며 살인미수에 그친 경우도 29명이었다. 이 가운데 남편의 보복성 범죄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제대로 집계조차 안 되는 현실이다.
때리는 남편의 대부분은 가부장적인 사고가 폭력으로 드러난다. 사회적으로 성역할의 관념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성들에게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
이들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된 개념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의 대부분이 "아내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는 형태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법무법인 신세계로 조인섭 이혼전문 변호사는 "최근 가정법원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가정폭력 심포지엄'에서 때리는 남편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아내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위압적으로 보여 섣불리 대항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정폭력, 가정 내에서 해결하라고?
가정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그 수위도 점점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히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경찰청이 가정폭력 사건 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과 수사관을 대상으로 '경찰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 및 업무 수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7.85%가 가정폭력은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아직도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한 상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내가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이나 사법기관이 미온적인 대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 후 직접적인 구제나 제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편의 폭력은 더욱더 심해진다. 아내들이 신고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고미경 소장은 "가정폭력 종합 대책은 인권의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피해 여성들은 경찰이나 사법기관에서 2차 피해를 받기도 한다.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체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평범한 아내 B 씨는 26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술만 먹으면 망치와 연장을 들고 폭력을 일삼았고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아내의 배를 발길로 걷어차기도 했다.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아내를 향해 총을 겨누고 식칼로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이 이어졌지만 집을 나가면 친정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위협 때문에 법의 보호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결국 폭력을 견디다 못한 B 씨는 남편을 살해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내들은 만성적인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녀들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다. 더 큰 문제는 가정폭력이 2차, 3차 범죄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아내나 자녀가 가해자를 살해해 또 다른 범죄자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폭력의 되물림도 심각한 문제다. 또 다른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학교폭력 또는 더 큰 범죄로 발전하기도 한다. 경찰대학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교도소 수형자 4백8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인 결과 응답자의 51.2%, 성폭력 사범의 64%, 살인범의 60%가 성장 과정에서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복수 응답을 허용했을 때 직접적인 가정폭력을 당한 경우는 46.5%였으며 간접적인 피해 36.2%, 직·간접 피해를 모두 당한 경우는 31.5%였다. 청소년기 가정폭력 피해 경험자들이 미경험자보다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자녀에게 가정폭력을 가할 위험은 3배 이상 많았다. 가정폭력 예방은 강력 범죄 예방이라는 전향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정폭력 예방을 위해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행법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건을 형사사건이 아닌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하고 있다. 가정보호사건은 가해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가정법원에 송치해 보호처분을 기다리게 된다. 그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생기고 처벌 수위가 사회봉사나 부부 면담에 그치기도 한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모든 가정폭력 사건을 형사 기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꾸준한 교육이 중요하다. 가정폭력 대부분은 남녀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가장인 남편은 우월하고 아내는 열등하다거나 아내를 남편의 종속 개념으로 보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폭력을 허용하는 문화를 근절해나가야 한다. 가정폭력은 한번 시작되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익숙해지고,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용납되기도 한다.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함께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조인섭 변호사는 "초기에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생각하는 이들은 남편의 보복을 걱정하는데,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은 접근 금지 같은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벌어진 사건들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나 여러 단체에서 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용기를 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