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그는 추웠고, 몸은 고단했으며, 입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1995년 강원도 원주에서 눈길 행군을 하던 김상훈 이병은 문득 결심했다. "나는 이곳에서 나가면 이야기를 쓸 것이다."

조선일보와 한국콘텐츠진흥원·KBS가 공동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상훈(39)씨는 "20대 땐 글을 쓰면서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걸(해방감)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떤 걸로 고통스러워하는지 고민하고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작품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의 도움을 받은 현실적인 이야기다"라고 했다. 그가 이야기를 만드는 밥상에서 "인문학은 국과 밥 같은 존재"다.

‘2013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대상 수상자 김상훈씨는 “지난 10년간 쓰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 그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대상 수상작 '검솔, 세한도의 비밀'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얽힌 비밀의 역사를 그렸다. 잘라 붙인 허름한 종이에 그려진 후 청나라와 일본을 떠돌다 조선에 돌아온 이 그림에 현종의 후계를 둘러싼 왕위 계승 계획이 있다는 상상력을 보탠 팩션이다.

김씨는 "추사는 가장 근대에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청나라 스승에게서 실사구시와 같은 학문적 기풍을 배웠고, 다산이나 북학파와도 밀접한 교류를 했다"며 "집안도 잘살고, 기고만장했던 예술가가 만년에 인격적으로 성숙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했다. "한국 역사 5000년에 얼마나 많은 사건이나 인물이 있나요. 우리에게 거대한 자원이자 역량인 역사부터 이야기로 활용해서 콘텐츠의 밑바탕을 다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검솔, 세한도의 비밀'은 19세기 조선을 살던 추사와 그 미스터리를 쫓는 요즘 20대의 역사학도,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가 20대의 궁핍한 역사학도를 이야기에 집어넣은 것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추사가 '옛날의 유명한 사람' 이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20대들은 꿈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잖아요. 하지만 추사의 업적이란 운이 좋아서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과 시간을 통한 것이었어요. 무엇이든 빨리 이뤄지는 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상훈씨의 꿈도 빨리 이뤄지진 않았다. 공대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한 그는 군 제대 후 벤처 회사에서 게임 시나리오를 쓰거나 온라인 회사에서 콘텐츠 기획을 하는 직장생활을 10년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리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한 기반을 다진 것이다. 지난해 6월 직장을 그만두기 전 6개월 동안 그는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세 시간 동안 글을 쓰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쓴 소설 '백범 김구처럼 연극을 하라'를 낸 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갔다. 김씨는 프리랜서 작가가 됐지만 자유나 해방감을 경계한다. "나태함 때문에 글을 못 쓰고 죽진 않겠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자유롭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박하려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