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사랑하면 원고지 60장짜리 단편 하나를 쓸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 야마다 에이미다. "한 남자를 사랑하면 단편소설 60장을 쓸 수 있다. 나는 최근에야 이런 법칙을 알았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사랑하는 건지, 사랑을 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연애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애니멀 로직' '솔뮤직 러버스 온리' '공주님' 같은 소설을 쓴 그녀는 대학을 중퇴하고 몇 년간 호스티스로, 누드모델로 일하며 습작 기간을 거쳤다. 이후 흑인 남성과 결혼했고 자신의 삶을 거쳤던 남자들의 흔적을 흰 시트가 깔린 침대처럼 펼쳐진 원고지 가득 적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작가 중 연애소설을 가장 뜨겁고 차갑게 쓰는 여자였다. 사랑이 '지나가는 감정'이고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차가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찾아온 순간 열정을 폭발시켜야 한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나에 관해 정통한 건 그녀뿐이다. 그녀는 나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 대해 정통할 수 있는 거다"라는 건조한 문장을 쓰면서, 동시에 쾌락이 얼마나 축축한 것인지 알고 있는 여자 특유의 포즈가 있었다. 나는 야마다 에이미를 '연애적 인간'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서희의 책 '관능적인 삶'에서 '연애적 인간'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존재하지 않았던 말을 비슷한 감성으로 만들어 쓰는 그녀의 말투가 친근했다. 습기 많은 문장도 근사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이 '첫 책'이란 말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자가 궁금해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그가 떠난 아침은 더디게 흘러갔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그의 책과 놀았다. 그렇게 헤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었고, 로버트 버튼의 '멜랑콜리의 해부학'을 접했다.
읽지 않은 그의 책만큼 요염한 것은 없었고, 나는 그의 책을 유혹하듯 펼치고 열고 더듬고 따라갔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세상에는 포르노그래피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이미 이곳은 지독히 관능적이고 불순하고 관음적인 시선으로 넘쳐나는데, 이토록 은밀하고 매혹투성이인 세상에서 그 이상의 터치는 조금도 관능적으로 보이지가 않는걸…."
나는 자연스레 야마다 에이미를 떠올렸다. "남자가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는 함께 우산을 써보면 안다. 같이 우산을 썼을 때 설레는가 아닌가로 판단한다. 그가 전해주는 설렘은 강력하지 않았지만 그날의 비처럼 간지럽고 상쾌했다"는 문장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관능적인 삶'을 쓴 작가의 나이는 41세. 그녀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러니까 이 모든 얘기가 일종의 회고담처럼 들리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의 후일담이 그렇듯 이 책에는 기묘한 노스탤지어가 있었다. 나 역시 스물 몇 살, 나를 '연인'이라기보단 '제자'로 대했던 한 남자의 작업실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여자가 사법시험 대신 영화를 공부하려고 파리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영화제에서 만난 누군가와 도피 행각을 벌인다. 파리는 이때 사랑과 관능의 도시가 된다. 연인과 나눈 은밀한 침대 속 대화는 이 책에 요염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떤 문장 속에선 풍성하게 익은 열대 과일 냄새가 났는데, 그것이 관능의 냄새가 아닌가 생각했다.
"인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관계가 있다. 나는 서로 존재가 연루되었음을 느끼는 사람들을 아주 가끔 만난다. 헤어날 수 없음에 허탈해하다 항복하듯 나를 내던지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공범처럼 서로를 인식한다. 너의 존재는 나에게 위로인 동시에 절망, 그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매혹이다."
만약 누군가 이 책을 읽고 헤어진 연인과 그가 떠난 침대를 떠올린다면 독서는 '책 읽기'가 아니라 '체험했던 과거'를 감각하는 관능적인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책을 읽고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를 재정의한다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자기 계발서로도 읽힌다. 그건 '언니의 독설'류의 충고가 아니라 사랑을 여러 차례 겪어낸 선배의 반짝이는 힌트나 유용한 예감 같은 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매일매일 변한다. 늘 주변에 있는 사람도 자세히 관찰하면 변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눈두덩이 어제보다 부어 있을 때도 있고, 입매가 조금 더 늘어져 있을 때도 있다. 귓가에 새로 생긴 점을 발견하는 놀라운 일도 있다. 발명자보다는 발견자가 되기를 소원했던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면 탐험하는 기분으로 상대방을 살폈다.
그렇게 발견해가며 미개척지에 이름을 짓고, 아름다움에 서사를 부여한다. 그러면 나도 상대도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떠오른다. 발견이 발명이 되는 순간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이처럼 무한하고도 신비로운 행위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찾기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 혹은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놀랄 만큼 멋진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더 황홀할 수 있다."
어떤 책엔 합당한 독서법을 명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시간대에 어떤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효과가 배가된다는 걸 의사처럼 처방해주는 것이다. 문득 '밤에만 읽으시라~'고 펼쳐졌던 소설 '은교'의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나는 이 책 표지에 이런 말이 붙어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밤에만!" 혹은 "반드시 침대에 기대서!" 혹은 "작은 스탠드 아래에서!"라는 지침 말이다.
이제 나는 열정 없는 삶이 얼핏 순해 보인단 걸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어도 열정이 살아 있는 어떤 희귀한 사람들을 '발견'해 내곤 감탄한다. 아마도 야마다 에이미 같은 '연애적 인간'이 그런 부류일 것이다.
사랑 없인 아무것도 안 되는 삶. '삶'의 한국어 오타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것에서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들 말이다. 첫 책을 쓴 그녀가 그런 사람인 듯하여 반가웠다.
●관능적인 삶―이서희의 첫 책.